[연구원 난자기증 논란]한국적 정서-서구윤리 잣대 충돌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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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팀의 여성 연구원이 난자 기증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연구원의 자발성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황 교수팀이 개 복제에 성공한 직후인 8월 3일 공개한 연구실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황우석 교수팀의 여성 연구원이 난자 기증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연구원의 자발성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황 교수팀이 개 복제에 성공한 직후인 8월 3일 공개한 연구실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간과한 발목 잡기인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배한 비윤리적 시술이었나.”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석좌교수팀을 둘러싼 생명윤리 논란의 핵심은 여성 연구원 2명의 난자 기증이 순수하게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여부다. 그런데 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변수는 동서양 간 문화 차이다. 서구 과학계에선 ‘팀장과 연구원의 관계’에서 자발적 기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서구 과학계와 국내 일각에서 과도하게 황 교수를 공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

▽헬싱키 선언 위반인가=서구 과학계에서는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연구의 윤리원칙인 ‘헬싱키 선언’ 위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1964년 제정된 이 선언은 “시험 수행에 대한 동의를 얻을 때 의사는 피험자가 자기에게 어떤 기대를 거는 관계가 아닌지, 또는 그 동의가 어떤 강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러한 경우라면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의사가 (피험자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 자체만으로는 황 교수팀이 이 선언을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서구 과학계는 “연구원들이 ‘어떤 기대’나 강요 없이 난자를 기증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해석해 왔다. 팀장과 팀원 간의 관계를 계약관계로만 여기는 서구적 문화에선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발적 기증’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동양적 가치관을 무시한 비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적 정서로 볼 때 난치병 치료 연구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에서, 혹은 소속된 팀의 발전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난자를 기증하는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같은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대가성이 있는 기증’으로 결론짓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조성택(趙性澤·철학) 교수는 “계약과 약자 보호를 중시하는 서구적 윤리 기준과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동양적 윤리관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세계적 기준을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서양의 윤리 기준만 맹목적으로 절대시해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깎아내릴 필요는 없으며, 동서양의 문화적 윤리적 차이를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위야 어찌됐든 국제 과학 윤리를 어겼기 때문에 황 교수가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인제대 강신익(姜信益·의사윤리학) 교수는 “선진국 과학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얻으려 해선 안 된다”면서 “우리의 특수한 관행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해=이번 일을 계기로 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해 우리가 세계 선두를 달리는 분야에서 과도한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시각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기준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황 교수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한 것은 너무 국수주의적인 발언이었고 불필요하게 외국 과학자들을 자극한 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卜鉅一) 씨는 “황 교수의 연구 업적은 한 민족의 차원에 머무르기엔 너무 커졌다”며 “어쩌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는 난자 기증 문제를 세계 과학계에서 이슈화하는 것은 그만큼 황 교수가 외로운 연구를 해 왔다는 증거다. 세계무대에서는 외로운 도전이 손해일 수 있으므로 이 시점에서 열린 마음으로 선진국 과학자들과 연대해 공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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