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얼굴의 작은 특징 통해 사람구별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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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대 신경학자들이 메릴린 먼로와 마거릿 대처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들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했다.

왼쪽부터 먼로 사진, 먼로와 대처를 6 대 4로 섞은 사진, 먼로와 대처를 5 대 5로 섞은 사진, 먼로와 대처를 4 대 6으로 섞은 사진, 대처 사진.

실험 참가자들은 두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임에도 뇌에서 그 얼굴에 한 사람을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을 나타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같은 유명인의 얼굴은 세부 특징을 중심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캐리커처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미국 배우 메릴린 먼로는 누구나 얼굴을 잘 알고 있다. 이들 얼굴을 섞어 놓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실험에 따르면 의외로 두 사람을 섞은 얼굴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이든 먼로’나 ‘섹시한 대처’를 떠올리는 식으로 한 사람으로 인식하려 한다. 과연 뇌는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일까.

● 얼굴 인식 3단계

영국 런던대 신경학연구소 피아 로트시타인 박사팀은 대처 전 총리와 먼로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보여 주면서 누구인지 물었을 때 사람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장치로 뇌 활동을 분석한 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13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뇌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세 가지 단계를 밝혀냈다.

첫 단계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뇌 뒤쪽 영역이 활발히 활동해 얼굴의 주름살 같은 물리적 특징을 감지한다. 두 번째는 귀 바로 뒤쪽 뇌 영역인 ‘오른쪽 방추회(RFG)’가 활성화되는데, 이를 통해 얼굴을 전체적으로 평가해 뇌에 이미 저장돼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한다. 아는 얼굴인지, 처음 보는 얼굴인지 파악하는 것.

끝으로 ‘전방 측두 피질(ATC)’이 활성화되면서 파악된 얼굴에 이름이나 직업 같은 개인정보를 결부시킨다. 이 영역은 대상이 유명인일수록 더 활발히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트시타인 박사는 “이 가운데 한 단계만 빠져도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어떤 치매 환자는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간질 환자 중 일부는 특정인의 얼굴을 혼동한다. 또 아내의 얼굴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질병도 있다. 모두 뇌에 이상이 생긴 경우로 얼굴 인식 과정에 대한 연구가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캐리커처만 봐도 누군지 아는 이유

인간은 수백 수천 가지의 얼굴을 볼 때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일반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보다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에 얼굴 인식 과정에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반 서양인을 보면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지만 이승엽 선수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은 캐리커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정찬섭 교수는 “친숙한 사람이나 유명인은 세부 특징을 중심으로 인식해 잘 알아볼 수 있다”며 “하지만 낯선 사람은 전체적인 모양으로 얼굴을 보게 돼 인식 정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에서 외국인과 자국인의 얼굴을 제시했을 때 자국인을 더 잘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얼굴의 표정을 인식하는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한재현 박사는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의 사람들 사진을 섞어 놓았을 때 화난 표정을 더 빨리 찾아낸다”고 밝혔다. 화난 표정은 자신을 해칠 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화난 표정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진화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 로봇이 얼굴 식별하려면?

최근에는 로봇이 얼굴을 통해 상대를 알아보고 컴퓨터가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양현승 교수는 “뇌에는 특정 각도에서 본 2차원 이미지가 여럿 기록돼 있다”며 “상대방 얼굴을 볼 때 이 저장된 이미지와 비교해 뇌가 누구인지를 구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 “뇌가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을 기반으로 얼굴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양 교수팀은 정면 얼굴과 90도 돌아간 옆얼굴의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임의의 방향으로 돌아간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의 얼굴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컴퓨터가 정면 얼굴과 옆얼굴 정보를 적당히 합성해 임의의 얼굴과 비교하는 방식이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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