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속이면 살고 들키면 죽는다”

  • 입력 2003년 3월 2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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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속임수의 명수다.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 새끼는 가짜 어미의 알과 새끼를 바깥으로 떨어뜨리고 둥지를 독점한다. 대부분의 새들은 ‘뻐꾸기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뻐꾸기 알을 골라내는 기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단 뻐꾸기 알이 자신의 둥지에서 부화한 뒤에는 자기 새끼인 것으로 철석같이 믿는다.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부모보다 5배나 몸집이 커지는 데도 부모는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운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조류학자인 나오미 랭모어는 알이 부화한 뒤에도 뻐꾸기 새끼를 눈치채 굶겨 죽이는 굴뚝새를 발견했다. 이런 굴뚝새에 맞서 뻐꾸기 새끼는 살아남기 위해 굴뚝새의 새끼 울음소리까지 흉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화에서 승리하려는 뻐꾸기와 굴뚝새 사이의 이런 ‘군비 확대 경쟁’이 과학잡지 ‘네이처’ 최근호에 발표됐다.

랭모어씨는 “다른 새들이 뻐꾸기의 알을 잘 구분하는 데 반해 이번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굴뚝새는 뻐꾸기와 매우 비슷한 알을 낳기 때문에 어두운 둥지에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굴뚝새는 자기 새끼가 모두 둥지 바깥에 떨어져 있다거나, 새끼의 울음소리가 약간 다르다는 것을 통해 자기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뻐꾸기 새끼의 40%를 굶어죽게 만든다. 이런 굴뚝새의 방어에 맞서 뻐꾸기도 새로운 공격법을 개발해냈다. 처음에는 굴뚝새의 알을 모방했지만, 이번에는 먹이를 달라고 외치는 굴뚝새의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뻐꾸기는 자신이 직접 아기를 기르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에 속임수 ‘탁란’을 한다. 그러나 다른 새들의 방어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뻐꾸기는 군비경쟁에서 뒤지게 되면서 진화의 속임수가 모두 떨어져 결국은 자식을 직접 키우는 기술을 터득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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