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라면 "절대 안하지!"…한국 표준 네티즌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14분


최근 인터넷 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 부족이 일차적인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한번 보고 나면 시들해지는 콘텐츠, 그리고 반짝성 이벤트를 중심으로 한 ‘회원 부풀리기’식의 경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년 들어 인터넷 기업들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콘텐츠 강화에 주력하면서 유료화라는 수익구조를 모색하고 있는 것.

문제는 기업의 변화에 소비자가 호응할 것이냐 하는 것.

국내 인터넷 이용인구는 상당한 거품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고 아직 유료화를 시도하기에는 국내 네티즌들의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산업이 모처럼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기업의 변신, 그리고 이에 맞장구쳐줄 네티즌의 성향과 움직임을 짚어보는 집중기획을 마련했다.

올해 19세의 예비대학생 김내준군. 특차전형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한 그는 요즘 인터넷에 푹 빠져 지낸다. 주로 즐기는 것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최신가요 뮤직비디오나 MP3 파일을 받고 동창회 사이트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게임을 하는 것.조만간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어서 컴퓨터 쇼핑몰에서 신제품 정보도 유심히 살피고 있다.물론 인터넷 방송 등 성인사이트도 호기심에 감초처럼 들르는 곳이다.

벤처기업에 종사하는 박서빈씨(22)는 영화예약이나 식당고르기 등 뭔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인터넷부터 찾는 인터넷 마니아다.사무실에서는 업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이외에 메신저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며,퇴근후에는 오후 8∼11시 사이에 주로 접속한다.아직 사이버트레이딩은 이용하지 않지만 쇼핑몰에 가끔 들려 음반이나 생활용품을 구입하고 예약서비스를 활용한다.

김군과 박씨는 넷밸류코리아, 한국통신경영연구소, 인터넷매트릭스 등이 최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본 가상의 한국형 네티즌 ‘표준모델’이다.

두 네티즌의 공통점은 하루라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허전해 한다는 점. 처음에는 호기심에 인터넷을 뒤지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유용한 생활수단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한창 논의되고 있는 인터넷 콘텐츠의 유료화에는 반대하는 편이다. 아직 인터넷 콘텐츠의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가치가 있는 정보에는 돈을 지불할 수 있지만 현재 수준의 콘텐츠라면 무료로 얻을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생각. 서비스의 질은 형편없는데 유료화를 부르짖는 일부 인터넷 사업자들을 보면 “절대 돈을 낼 수 없다”는 반감도 든다.

인터넷 조사업체인 아이클릭의 최근 조사에서는 콘텐츠 유료화에 반대한 네티즌이 42.1%, 가치가 있다면 돈을 내겠다는 쪽이 53.6%를 차지했다. 한편 72.8%는 다른 곳에서 무료콘텐츠를 구하겠노라고 대답해 이들과 생각이 같음을 반영했다.

국내 대표적인 포털업체인 다음의 이재웅 사장은 “네티즌이나 사업자나 아직 유료화는 시기상조”라며 “유료화 전환은 당분간 고려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해 유료화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김군이 오락과 게임을 즐겨하는 반면 박씨는 메일과 채팅을 많이 이용한다. 사이트는 김군의 경우 스포츠와 뉴스를, 박씨는 건강 및 쇼핑몰을 좋아한다. 인터넷 유료화를 오락과 게임 그리고 쇼핑몰이 이끌고 있는 것은 결국 네티즌의 취향을 따른 것.

한국통신경영연구소의 작년말 조사결과 김군과 박씨의 한달 통신요금은 5만원 내외였지만 휴대전화와 초고속인터넷 이용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인터넷 콘텐츠 이용 대가는 휴대전화 벨소리와 캐릭터 다운로드 인터넷 게임비 등을 합쳐 3000원이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인터넷을 ’유료로 이용한다’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남짓. 주로 음반이나 DVD 등 5만원 미만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결제는 신용카드와 지로납입으로 하지만 매번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하는 편이다.

인터넷매트릭스에 따르면 올들어 평균 인터넷 이용시간은 작년보다 늘었다. 그러나 TV시청시간(1주일에 15.9시간)에 비해서는 짧다.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정보는 아직 TV가 편하고 앞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도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기지만 인프라와 서비스 품질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넷밸류코리아는 “35∼49세 이상의 장년층이 인터넷 주 이용층을 차지한 서구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15∼24세 사이의 남학생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 인터넷 인구중 남성대 여성 비율(56대44)이 좁혀지고 있고 대부분의 네티즌이 인터넷을 이용한지 6개월 이상(62%)되는 등 성장기의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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