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유선… 헬로 유선" 복잡한 線으로부터 해방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10분


오전 6시반. 세스컴의 황준호이사를 단잠에서 깨운 것은 시계가 아닌 PDA(개인휴대단말기)였다. 황이사의 PDA는 미국 3COM사의 ‘팜Ⅴ’. ‘버그미’라는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E메일 도착과 약속시간을 소리로 알려준다.

황이사는 이불 속에서 PDA를 휴대전화에 연결했다. 밤새 해외 협력사에서 보내온 E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컴퓨터를 켜고 전화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20여분 이상 걸리지만 PDA는 5분 만에 해결해준다.

오전8시 출근길. 현대자동차 지능형 교통시스템 개발실 박찬석대리가 차량항법장치를 보면서 서울 강남의 호텔 행사장으로 가고 있다. 항법장치는 LG텔레콤 019휴대전화망과 무선으로 연결돼 교통 혼잡상황을 전해준다. 요즘엔 전자상거래와 팩스송수신 등의 서비스까지 지원해 더 편리해졌다. 무선 E메일도 기본.

사람들은 황이사와 박대리를 ‘무선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선이 있어야만 살아가던 유선(有線)생활을 대부분 버렸다. 한마디로 굿바이 유선, 헬로 무선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무선 통신기술은 거추장스러운 케이블을 하나 둘 없애버리고 있다. 휴대전화 데이터통신에 이어 블루투스와 광대역WLL(Wireless Local Loop) 등 첨단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속도와 비용면에서도 빠르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손안의 초고속인터넷’을 실현할 IMT―2000이 2002년 상용화되면 복잡한 선들로부터 해방되는 무선혁명은 본궤도에 오를 전망.

낮 12시. 한국통신 프리텔 표현명이사는 일본 출장지시를 받고 급하게 택시에 올랐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비행기표 예약을 못한 상태. 그러나 문제는 없다. 택시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무선휴대전화 모뎀으로 항공사 사이트에 접속한 뒤 표를 사고 대금을 결제할 수 있기 때문. ‘016 엔키’서비스의 경우 64kbps속도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 일반 전화선보다 오히려 빠르다.

2시간 뒤인 오후 2시 서울 신대방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테크놀러지(GCT)사의 기술개발연구소. 미국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이 회사의 이경호기술책임은 국내 최초로 개발한 블루투스칩의 성능테스트에 몰두해 있다. 블루투스 기술은 10m이내의 근거리 초고속무선통신을 구현하는 첨단 기술. GCT사의 ‘GDM1100’칩은 크기가 손톱(8㎜瓢×8㎜)만해 휴대전화기 등 각종 정보기기에 쉽게 장착할 수 있다. 가격도 5달러 미만에 공급이 가능해 퀄컴, 에릭슨, CSR 등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오후 2시반 서울 홍제동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유인화씨는 증권정보단말기 ‘Q스탁’으로 주가 확인에 여념이 없다. 요즘은 장 막바지에 워낙 변동이 심해 휴대용단말기를 보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오후 7시반. 시그마컴의 심현도부사장은 강남의 저녁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휴대전화기를 자동응답 모드로 바꿨다. 전화벨은 울리지 않지만 오는 E메일은 다 받아놓는다. 잠시후 미국 출장중인 직원이 긴급호출을 했다. 멀티미디어 칩 가격 협상결과 예상보다 0.5달러 올라갔다는 내용. 즉석에서 메시지를 보내 계약타결을 지시하고 저녁식사를 즐긴다.

오후 11시30분. 하나로통신 광동축혼합망사업팀 박종수팀장은 서울 잠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업계동향 자료를 검색한다. 박팀장의 PC에는 전혀 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속도는 1Mbps급의 초고속. 지난 8월 아파트 단지에 B―WLL기지국이 설치돼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막한 밤. 그러나 보이지 않고 소리가 나지 않는 ‘무선’은 또다른 사이버 혁명을 예고하며 세계의 하늘을 광속으로 날고 있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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