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위기론'속 엇갈리는 벤처투자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7시 19분


《세계 최강의 인터넷 투자그룹을 자부하는 손정의 사장이 합작설립한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SBVK). 이에 맞서 국내의 대표적 8개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이 결성한 ‘연합군’ 성격의 코리아인터넷홀딩스(KIH). 국내 벤처투자의 주축을 이룬 두 진영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후 한치 양보없는 자존심 경쟁을 벌여왔다. 그로부터 만 10개월. 국내 벤처투자 분위기는 초기 ‘묻지마’식의 대량투입에서 현재는 ‘일단멈춤’으로 바뀌고 있는 양상. 그렇다면 IT벤처투자의 대표주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작금의 ‘닷컴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2일 본보가 입수한 양 진영의 ‘투자 명세표’에 따르면 양측의 상황인식과 현실대처는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SBVK의 경우 닷컴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공격 일변도’의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를 포함, 대부분의 국내 벤처캐피털이 한건의 투자도 없이 ‘숨을 죽이고 있던’ 8월과 9월, SBVK는 4개 벤처기업에 무려 155억원을 쏟아 붓는 괴력을 보였다. SBVK는 기업당 20억∼60억원씩의 거액을 투자한 상황. 이 회사 한동현 부사장은 “내부적으로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인터넷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며 “거품이 사라져 기업가치가 현실화되었고 연초에 비해 투자 문의 건수도 30% 이상 늘어나는 등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코리아인터넷홀딩스는 ‘한파’가 닥치기 시작한 7,8월 이후 투자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1개 기업당 평균 투자규모는 8억원(6월) 수준에서 5억원(10월)으로 줄었다. 이는 민간 최대규모의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가 상반기 672억원을 투자했다가 거품론이 본격 제기된 8,9월 들어 한건도 투자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KIH 관계자는 “수익성 있는 기업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분위기에서는 투자를 축소하는 것이 대세”라고 말했다. 대부분 벤처캐피털 업계도 “향후 3년간은 ‘자금 가뭄’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투자대상에도 색깔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성장가능 분야에 대한 양 진영의 견해가 다른 것. 이른바 ‘손정의 칩’으로 불리는 SBVK의 투자기업 12개 가운데 절반인 6개가 B2B와 B2C 등 전자상거래 관련기업. 이는 일반적으로 ‘전자상거래는 수익성이 없다’며 등을 돌리는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SBVK는 이른바 ‘닷컴’기업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KIH는 초고속 인터넷장비인 VDSL장비, 교환기 등 IT하드웨어업체와 리서치전문회사, 인큐베이팅 등 제조업이나 ‘서비스 2선’ 기업에까지 상당부분을 투자하고 있다. ‘닷컴’중심의 투자에서 탈피해 ‘스펙트럼’을 IT산업 전반으로 다양하게 넓히고 있는 것.

수익률의 승자는 누가 될까. 전문가들은 아직 “결론을 내리기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요즘처럼 얼어붙은 시장상황에서는 고위험(High Risk) 고수익(High Return)을 추구하는 SBVK의 전략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는 분석. 그러나 수익률에 앞서 지나치게 단기적인 시장상황에 휩쓸려 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처럼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수묵기자>moo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