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정신분석]운동경기 응원/승패 몰두하면 흥분

  • 입력 1998년 4월 3일 20시 01분


한일간의 축구경기는 선수나 감독만의 경기가 아니다. 온 국민이 경기의 승패에 매달린다. 경기에 지면 감독이하 선수들은 쏟아지는 국민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오늘의 일본 축구가 장기 투자의 결과라는 점을 잊은 채 이기면 당연한 것이고 지면 나라가 무너질 것같이 애통해 한다.

이러한 정서적 반응의 뒤에는 ‘투사(投射)’라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다. 즉 개인문제 팔자 운명을 운동경기에 투사해 동일시하니 그 결과에 정서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일순간의 흥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기면 마치 일본열도를 정복한 것처럼 자만하고 패배하면 일본에 정복당한 것처럼 좌절하는 순간순간에도 한일간의 진정한 국력차이, 무역역조, 전투력의 열등함, 문화수준의 열악함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동경기의 승패가 국민 개개인의 팔자나 국가의 운명을 뒤바꾸지는 않는다. 경기과정이나 결과를 자신의 문제와 동일시하는 것은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매우 미성숙한 일이다. 자신의 문제를 운동경기에 투사해 몰두할 때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작업, 즉 자아성찰이 방해받는다. 자아성찰이 없이는 문제의 파악 개선→해결→발전 창조가 있을 수 없다. 운동경기는 운동경기일 뿐임을 받아들이고 평상시의 마음을 되찾아 국난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정도언(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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