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뛴다 上]『「어둠의 경제」기술력으로 돌파』

  • 입력 1997년 3월 31일 19시 48분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우리 경제의 주축산업들이 성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무기로 벤처기업들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의 어둠을 밝히는 새로운 빛으로 떠오를 것인가.>> [허승호기자] 『콧날을 세우는 수술을 하고 나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턱을 깎고난 모습도 보여드릴까요』 성형외과의사들은 요즘 환자들에게 수술후의 결과를 설명하기가 무척 편해졌다. 비트컴퓨터㈜가 개발한 프로그램 덕분이다. 비트컴퓨터는 지난 83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3년생이던 趙顯定(조현정·40)사장이 자본금 4백50만원으로 설립한 벤처기업. 『처음엔 친척이 경영하는 병원의 전산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 일을 시작했죠. 그후 개선을 거듭, 1백40개 종합병원의 전산화를 했습니다』 직원 1백2명중 연구원이 44명. 나머지는 고객지원을 맡는다. 최근에는 X선필름을 디지털로 보관하는 첨단시스템을 개발, 비약적인 성장을 기약하고 있다. 작년 매출액은 70억원, 올해는 1백30억원으로 늘린다는 야심이다. 오는 5월에는 장외등록을 하고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李栽吉(이재길)통상산업부 중소기업정책관은 『비트시스템같은 고기술의 벤처기업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라고 잘라 말했다. 거액부도사태와 경상적자 누적 등으로 경제난국의 탈출구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는 역시 벤처기업이 제격이라는 것. 『중후장대형 산업이나 「배끼기」기술로는 산업의 노화와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걸음마단계에 불과하지만 벤처산업을 통해 난국을 풀어야해요』(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이 벤처기업의 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벤처기업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다. 빌 게이츠가 세운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전형적 벤처기업. 미국은 90년대 들어 중소벤처기업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왔다. 미국엔 현재 실리콘힐 텔레콤코리더 테크놀러지코리더 실리콘플레이 골든트라이앵글 등 수많은 「제2의 실리콘밸리」들이 형성돼 벤처기업들의 요람이 되고 있다. 미국 경제계를 강타한 무더기 감원으로 5백대 기업의 고용이 지난 88∼92년 평균 0.8% 줄어든 가운데 벤처기업의 고용은 19% 늘었다. 벤처기업의 역할이 경제활성화와 경제구조조정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무사안일 책임전가 의사결정지연 등 대기업병을 고치는데도 벤처는 유효하다. LG그룹은 작년 사내벤처제를 도입, 사원들의 지원을 받아 2개의 벤처팀을 만들었다. 이들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면 아예 독립시킬 예정이다. 삼성 데이콤 등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벤처기업 육성과 일반 중소기업 창업지원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벤처기업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기술력도 없이 돈을 대는 사람이 경영까지 장악한다면 참된 벤처기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이 점이 벤처기업과 재래형 중소기업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벤처기업은 일반은행의 금융지원이 아니라 벤처기업가에게 창업자금을 대주는 많은 여유돈 소유자(비즈니스 엔젤)들의 자본참여로 성공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벤처기업가의 전력투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스톡옵션제가 확립돼야 한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당연히 이같은 점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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