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 결렬 1개월…한국이 가야할 길은…[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15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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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노이 회담 결렬가능성을 일본은 사전에 전해 들었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미동맹의 균열이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비핵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북한을 압박할지라도 한국은 평화, 나아가 통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북한을 껴안고 경협으로 나가야 한다는 방향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균열은 가시화 되고 미국 정부가 한국을 못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만의 길을 추구해야 할까요. 미국과 공조를 맞춰야 할까요? 한국 외교가 가야할 길이 궁금합니다.

-이수빈 서울대 경영학과 14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이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에 앉은 사람)과 최선희 부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측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노이=AP뉴시스
이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에 앉은 사람)과 최선희 부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측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노이=AP뉴시스

A.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옳은 방향이라면 아무린 힘든 길이라도 가야 합니다. 반대로 옳지 않은 방향이라면 생각을 바꾸고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고민해야 하구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세의 판단이나 국익의 고려는 막연한 기대나 희망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과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이 길이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우리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봅니다.

먼저 일본이 하노이 회담 결렬 가능성을 전해 들었다는 것은 일본 측 주장이고, 더욱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 나온 말이니 만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해서 실무회담을 갖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이후, 미국도 협상 결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선택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미-북 정상 간 만찬과 정상회담을 갖는 과정에서 노딜(no deal) 쪽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구요.

일본이 한국보다 조금 일찍 알았을 수는 있지만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의 정보력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일본만 믿었기 때문에 정보를 주었고, 한국은 못 믿을 상대이기 때문에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계 3위 경제력과 5만5000명의 주일미군, 그리고 중국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일본이 미국과 더 잘 지내는 것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동시에 오랜 기간 일본은 워싱턴에서 다양한 공공외교를 해왔고, 그 결과 우리 한국에 비해 미국 행정부 내에 튼튼한 지지층을 확보해 놓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런 네트워크를 통해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가능성과 관련된 정보를 보다 일찍 얻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실제 정부 내부에서 일해 보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잘 관리하려고 합니다. 미국이 의도를 가지고 한국과 일본을 차별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의도적으로 차별할 경우 한국이든 일본이든 다른 일방에서 문제제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가능하면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합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정보 획득 노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성이 큰 것이지, 한미균열로 인해 정보 확보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력들이 22일 ‘상부의 지시’라며 연락사무소에서 전원 철수했다가 사흘 만에 복귀했다. 동아일보DB.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측 인력들이 22일 ‘상부의 지시’라며 연락사무소에서 전원 철수했다가 사흘 만에 복귀했다. 동아일보DB.
두 번째 질문은 현재 미국 트럼프 정부와 우리 문재인 정부간에 북핵 문제를 둘러싼 우선순위에 이견이 있는가, 그리고 그로 인해 갈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인데요. 사실 그렇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이나 미국 모두 행정부 차원에서 이를 인정하긴 어려운 거죠. 공개적으로 이견을 밝히면 양국간 갈등의 폭이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두 번의 미국 출장을 통해 미국 관료와 전문가들과 폭넓은 대화를 가졌는데요. 워싱턴 내에서는 한국 정부가 제재완화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데에 대한 불만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하노이에서 북한이 그들의 비핵화 조치는 영변 핵시설로 국한하고, 미국의 상응조치는 실질적인 제재를 모두 해제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봅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제재 이행을 강화해서 북한을 실질적인 비핵화로 유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하노이 정상회담이후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계속 언급하고 있으니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북한 편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 비핵화를 설득해 달라는 취지로 이야길 했는데, 우리 정부가 이를 중재 요청을 받은 것처럼 발표를 해서 기존의 불신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일시적인 갈등이나 불신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한미간 이견이 있었던 시절은 많습니다. 지금의 갈등도 충분히 의견 조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라는 표현을 삼가고 촉진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대북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된 접근을 바로잡고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봅니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한다면 한미간의 갈등이 증폭되지 않고 점차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사실 이미 당연히 했어야 할 일들인데 남북관계를 우선시 하다 보니 그간 소홀히 해왔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보다 근본적인 물음인데, 한국 정부의 생각이 미국과 다를 때 독자노선을 가야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가 가야할 길과 미국의 길이 다를 때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익과 주변정세 그리고 선택한 정책의 파급효과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자칫 그간 쌓아온 외교적 성과를 모두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고, 아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은 반대입니다. 현재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거래를 하지 않은 것도 비핵화를 고려한 행보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국익에도 부합합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보다 남북교류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고, 남북교류가 활성화 되면 비핵화 문제는 따라서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 시점에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겠죠. 하지만 남북교류가 활성화 되면 비핵화 문제에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지난 30년간의 역사와 배치됩니다. 북한은 대북 포용정책을 전개했던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핵무기를 개발해 왔습니다. 말로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행동은 그 반대였죠.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해 왔습니다. 남북관계 진전을 이유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문제를 간과하고, 더구나 북핵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한미동맹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한미관계가 악화되면 여러 어려움이 따릅니다. 먼저 북한과의 대화도 잘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북측 인원 철수 사태와 같이, 북한은 우리 한국과의 관계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합니다.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영향력이 있는 경우 남북관계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차갑게 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입장을 옹호하다가 한미관계가 악화될 경우, 궁극적으로 한국은 북한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고립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간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누려왔던 안정적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보비용이 급증합니다. 지난 60여 년 간 우리는 한미동맹을 통해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발전에 힘써왔습니다. 동시에 미국이라는 대규모 시장을 통해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 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핵안보정상회의나 세계사이버총회 개최 등을 통한 우리의 글로벌 위상 제고도 동맹국인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이루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외교적 행보를 정리하면 미국에 대한 일종의 편승 전략이라고 볼 수 있고, 성공의 역사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안보비용이 증가하고 경제여건이 악화되며 글로벌 위상이 추락합니다. 따라서 미국과 다른 길을 갈 때는 그만큼 분명한 국익이 필요한 것이죠.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지만 만일 미국이 북한과 부적절한 타협을 해서 북핵을 용인하고 주한미군을 감축한다면 이땐 전술핵 배치나 독자적 핵능력 건설 등과 같이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사안이 아니면 미국과 갈등을 감수하며 독자 노선을 걸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 외교가 걸어가야 할 길은 우리의 국익을 잘 지켜나가고 우리 후대에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평화를 실현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은 가장 중요한 협력 메커니즘입니다. 따라서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적 상상만으로 한미공조를 흔들어서는 안 되고, 보다 절제되고 신중한 행보를 통해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시달림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기에 본능적으로 강대국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거 외세와 달리 미국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국내정치에 대한 간섭 가능성은 가장 적은 강대국입니다. 이 점을 계속해서 활용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의 기틀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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