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바로 지금이 ‘분단저널리즘’ 경계해야 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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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한반도 평화 국면을 맞이하여 저널리즘의 방식이 ‘분단 저널리즘’에서 ‘통일 저널리즘’으로 변화되어 가는 인상을 받습니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통일 저널리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민의 입장으로서는 어떤 자세로 각종 저널리즘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함양해야 할까요? 또한,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과 고민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A. 2018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북한이 과감한 전방위 대화국면을 조성하면서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표면적이지만 가장 상징적인 것이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호칭이지요. 2016년부터 2년 동안의 대외 전략도발 국면에서 이름만 불러 지탄의 뜻을 전했던 김정은에게는 ‘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이라는 정식 칭호가 붙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설주에게도 ‘여사’라는 존칭이 붙었구요. 북한과 대화에 나선 정부가 이를 원했고 대화와 협상이라는 외교적인 방법으로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길 바라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북한도 과거 ‘남한 괴뢰패당의 수괴’라고 하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이란 존칭을 사용했습니다.

신문 지면과 방송 보도 등에서 전년까지 제2의 한반도 전쟁위기를 조성하는 주범처럼 취급됐던 김정은 위원장은 이젠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20여년 된 이 문제가 군사적 충돌이 아닌 외교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풀릴 가능성을 일단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의 첫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정상회담을 비롯해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미북 정상회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차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 한국 언론들은 새로운 팩트를 전하면서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나 기사들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한국과 국제사회가 또 한번의 북한 기만극에 현혹되고 있다는 의심을 강하게 내포한 기사나 칼럼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비핵화와 같은 중대한 외교적 성과물은 상대방의 행동과 가시적인 조치로 확인되는 것이지, 말과 제스처를 통한 의지표현만으로는 그것의 진위를 알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학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의심보다 북한의 진정성을 믿어주고 싶은 호의적인 분위기가 전년에 비해 많아졌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통일 저널리즘’이라고 개념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통일 이라는 개념 속에는 북한이 싫어하는 독일식 흡수통일이 내포되어 있고, 북한의 비핵화가 곧바로 어떤 식의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현 정부는 북한의 급속한 붕괴에 따른 독일식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오히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게 함으로써 우선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뤄보자는 정책기조가 강합니다. 한국 언론들이 모두 정부의 정책기조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적인 비핵화를 바라는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곧바로 통일에 대한 기원을 깔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14년 ‘분단저널리즘 뛰어넘기’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분단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던 저로서는, 오히려 지금도 ‘분단 저널리즘’의 폐해를 경계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제기한 분단저널리즘이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남한에서 생산되는 북한 및 남북관계 보도가 서구 저널리즘 원칙을 일탈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북한과 남북관계를 다루는 남한 기자들이 공정성과 정확성, 객관성, 취재원 공개, 전문가 인용의 적정성 등 서구 저널리즘이 구축한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 나타나는 언론보도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각 언론사들이 북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위에 서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기자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기사를 써 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이 특정한 이념적 스펙트럼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사실과 다른 잘못된 북한 기사를 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 관련 정보를 사실상 정부가 독점하는 구조와 만나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반영된 북한 기사들이 현실을 호도할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보수 정부 하에서는 북한의 나쁜 점을 부각하는 기사들이 더 많고, 진보 정부 하에서는 북한의 좋은 점을 홍보하기 위한 기사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한국 기자들이 취재하는 많은 영역,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기 마련이지만, 북한 영역만큼 정부 교체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는 영역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보수 정부는 북한과 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고 진보 정부는 북한과 관계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분단국가 한국의 태생적인 정치 지형의 필연적인 결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그 변화에 너무 휩쓸리지 말자, 최대한 공정성과 객관성 등 서구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분단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언론은 이러한 ‘분단 저널리즘’의 구조와 위험성을 인정하고 가급적 정치와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사실을 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인들도 스스로 전문성을 키워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퀴어야 하겠습니다. 또 사실을 말하는 전문가와 희망을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이들을 구별해 인용해 정치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사실을 흐리는 일을 막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독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환 학생과 같은 언론 사용자들이 그러한 노력을 하는 언론과 기자들의 기사를 골라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 준다면 분단 저널리즘의 폐해가 크게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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