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55〉묵자의 비악(非樂)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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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관련한 모든 것을 격하게 반대한 2400여 년 전의 사상가가 있었다. 묵자였다. 그는 “악기의 소리가 즐겁지 않아서도 아니고, 구운 고기가 맛없어서도 아니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편안하지 않아서도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위로는 성왕들의 일과 부합되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만백성들의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논리에서 음악을 반대했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던 유가와 달리, 그는 서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특히 문제를 삼은 것은 탐닉이었다. 그는 임금이나 대신들, 관리들이 음악에 탐닉하는 것이 국가를 어지럽히고 조정을 위태롭게 만들고 나라의 곳간을 부실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 음악은 부르주아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비악(非樂) 이론이었다.

음악 없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음악이 삶의 일부가 되고 심지어는 ‘산업’으로까지 확장된 현대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묵자의 생각은 편협하고 고루해 보인다. 그는 음악의 기능을 즐거움에 한정한 나머지, 그것이 삶에 지치고 밟히고 눌린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의 초국가적인 영향력만 보아도 그렇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서로 적대감을 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까지 하나가 되어 그들의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 “꿈이 없어도 괜찮아/잠시 행복을 느낄/네 순간들이 있다면/멈춰서도 괜찮아.” “왜 자꾸만 감추려고만 해/니 가면 속으로./내 실수로 생긴/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답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보다 더 위로가 되는 긍정의 정신이 있을까.

음악이 가진 위로와 치유의 힘을 묵자가 간과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내칠 것까지는 없다. 그가 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음악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으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음악#묵자#비악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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