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39〉‘약방의 감초’ 같은 레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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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잇몸이 붓고 결국 이와 분리되면서 고기는 물론 비스킷조차 씹기 힘든 상태가 됐다. 거의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1498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가마가 이끈 인도 항해에서 선원 140명 중 절반이 그렇게 괴혈병으로 숨졌다. 18세기 말 영국 해군이 레몬즙으로 괴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괴혈병의 비밀이 마침내 밝혀졌다. 그때까지도 비타민의 존재조차 몰랐던 시기였다. 레몬의 원산지는 히말라야 지역으로 9세기 아랍에 유입된 뒤 이슬람왕국을 통해 시칠리아와 스페인에 퍼졌다. 알람브라의 티그리스발리와 그린가든, 분수도 이 당시 이슬람왕국을 스페인에 재현했던 것이다. 아랍인들은 가는 곳마다 레몬을 심었고 스페인에도 자리 잡게 됐다.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통해 아메리카대륙에 퍼졌다.

배우 귀네스 팰트로와 제니퍼 애니스턴, 가수 비욘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레몬워터를 한잔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레몬워터 한잔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큰 훌륭한 건강 비법이라고 조언한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하루에 100kg 이상의 생선을 손질할 때면 손에 밴 비린내를 비누만으로 세척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 레몬조각을 잘라 손에 비비면 비린내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피부도 부드러워지고 하루 종일 은은한 레몬향이 느껴진다.

여름철 수확되는 레몬은 사계절 동안 공급된다. 가장 편하게 레몬즙을 짜는 방법은 전자레인지에 20∼30초 강하게 돌리거나 도마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이용해 굴리면서 힘을 주고 누른다. 이후 반으로 잘라 즙을 낸다. 레몬은 약방의 감초만큼이나 요리에 자주 쓰이는데,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레몬이 없는 주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블랙티에 레몬 한 조각을 넣거나 레몬 비네그레트 소스를 만들 수 있으며 생선을 날로 먹거나 구워 먹을 때도 레몬즙을 뿌리면 향과 함께 신선한 맛이 더 살아난다. 노란 껍질만을 사과 껍질 벗기듯 얇게 떠 다진 뒤 파스타 위에 얹을 수 있고 베이킹, 디저트용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요즘처럼 아주 무더웠던 어느 여름 나는 미국 횡단길에 올랐다. 끝이 없는 지평선과 아무도 없는 유령마을의 낡은 간판과 망가진 주유소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순간 물과 기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살피면서 불안에 떨었다. 급히 지도를 꺼내 가까운 마을을 찾았다. 멀리서도 보이는 큰 나무 그늘 아래에는 간이 테이블이 있고 직접 만든 듯 보이는 쿠키와 얼음에 재워둔 레몬에이드가 쉽게 눈에 띄었다. 주인인 듯 보이는 꼬마 소녀에게 쿠키와 레몬에이드를 판 돈으로 뭘 하려는지 물었다. 소녀는 수줍은 듯 “엄마 생일이 곧 다가와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레몬에이드를 마시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녀는 내가 만난 전 세계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레몬#비타민#레몬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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