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7> 승리하고 다스리지 못한 리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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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전술과 장군을 이야기하자면 손자(孫子)에서 시작한다. 서구 전쟁사의 출발점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명한 그림이 다리우스 3세와 벌인 가우가멜라 전투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이다. 이 모자이크는 화산 폭발로 묻힌 폼페이의 저택에서 발굴됐다. 이 모자이크는 원래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던 것을 피우스라는 부호가 자기 정원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는 겨우 4만7000명의 병력으로 다리우스 3세가 지휘하는 20만 명의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격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봉에 서서 싸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가우가멜라에서도 그는 기병대를 이끌고 선두에서 달렸고, 페르시아군의 조그만 틈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뛰어들어 승리를 거두었다.

모자이크의 작가도 격정적인 알렉산드로스를 묘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왕은 투구가 벗겨진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휘날리며 싸우고 있다. 작가가 투구를 벗긴 이유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을 드러내려는 의도였겠지만, 격정적인 알렉산드로스를 느끼게 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다.

사령관이 선두에서 싸우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알렉산드로스는 만용에 가까운 전투를 벌였다. 마지막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이 성벽을 돌파하지 못하자 그는 선두에서 성벽에 오른 다음 성벽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놀란 병사들이 성문을 돌파해 들어올 때까지 성 안의 인도 수비대와 단신으로 전투를 벌였다.

이런 용기로 그는 전쟁사의 별이 되었지만, 두 번이나 치명상을 입었다. 마지막 부상에서는 거의 죽다 살아났고, 얼마 후에 33세로 요절했다. 사인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지만, 당시 의학 수준으로 볼 때 부상 후유증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리더는 솔선수범과 용기로 이끌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가 어렵다. 한 가지 미덕으로는 한쪽에서의 승리밖에 거둘 수가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제국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의 삶은 성공이었을까 실패였을까?
 
임용한 역사학자
#알렉산드로스 대왕#모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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