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성질 버린 봄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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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비가 옵니다/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후략)’(주요한의 ‘빗소리’)

시인의 노래처럼 옛날 봄비는 은은하게 내렸다. 순수한 우리네 봄비를 나타내는 말에 ‘먼지잼’과 ‘는개비’가 있다. 겨우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의 비라는 표현이다.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시인만 봄비를 은은하게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내린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중국 시인 두보(杜甫)의 시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春夜喜雨)’를 보자.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당춘내발생(當春乃發生)/수풍잠입야(隨風潛入夜)/윤물세무성(潤物細無聲).’ 해석을 하면 이렇다. ‘좋은 비 시절을 알아/봄이 되어 내리니 만물이 싹을 틔운다/바람을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만물을 적시니 가늘어 소리도 없구나.’ 마지막 구절은 봄비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만물을 적시되 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두보는 모든 세상에 생명수를 주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이 봄비의 덕성이라고 말한다.

봄비가 가늘고 작은 빗방울로 이루어지는 것은 왜일까? 빗방울의 크기는 온도와 습도에 좌우된다. 기온과 습도가 높으면 빗방울이 커진다. 여름철에 굵은 소낙비가 내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봄에는 기온과 습도가 여름보다 낮아서 장대비보다는 새순을 촉촉이 적시는 보슬비가 주로 내린다. 빗방울 크기가 작다 보니 땅으로 떨어지는 속도도 느려지면서 소리도 거의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과 시인들이 노래한 조용한 봄비가 사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온 상승과 함께 습도의 증가, 해수 온도의 상승이 어우러지면서 비가 내리는 형태가 바뀌고 있다. 조용조용 땅을 적시는 덕성스러운 비가 아니다. 천둥번개와 돌풍을 동반하곤 소리소리 지르며 쏟아져 내린다.

올 3월을 예로 들어보자. 2018년 3월에 제주 산악 지역으로 하루에 35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한여름에도 쉽게 발생하지 않는 정도의 호우다. 3월 하순 초반에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겨울에도 내리지 않던 폭설이 내렸다. 대기 하층으로는 동중국해로부터 따뜻한 공기덩어리가 우리나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 동북동쪽 대기 상층에서 강한 한기가 남하했다. 중부보다 공기의 성질 차가 컸던 영남 지역으로 강력한 대기 불안정이 발생하면서 폭설이 내렸다. 이례적인 기후변화가 만든 ‘성질 못된’ 봄비의 모습이다.

그런데 말이다. 설령 기후변화로 성질이 사나워졌더라도 봄비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봄비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다. 기후 특성상 봄에는 비의 양이 매우 적기에 가뭄이 들 가능성이 크다. 행여나 봄 가뭄이 들면 농가는 비상이 걸린다. 그래서 ‘봄비는 쌀 비’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봄비가 많이 내리면 곳간이 찬다는 뜻이다. 올해 봄비도 풍족하게 내려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주요한#빗소리#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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