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법이 심판하지 못한 범죄는 누가 심판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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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그자를 열두 번이라도 기꺼이 찔렀을 겁니다. 데이지 이전에도 그자에게 유괴당한 다른 아이들이 있고 앞으로도 더 있을 것이기 때문이에요.―오리엔트 특급 살인(애거사 크리스티·황금가지·2013) 》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봤다. 분명 초등학교 때 원작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범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일행 중 하나가 “범인은 ○○다”라고 말해 모두의 원성을 샀다. 결말을 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1934년 이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은 호화 특급열차라는 배경과 고립된 공간 안에서의 살인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속에는 ‘법이 처벌하지 못한 범죄를 누가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주제도 담겨 있었다.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한 점도 이 책을 그저 가벼운 읽을거리로만 여길 수 없게 했다.

이 소설이 83년 전에 던진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 영화 등에선 자식을 대신한 부모의 복수가 일견 이해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올해 2월 한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딸의 말에 격분해 가해자로 지목된 고교 교사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 이 어머니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가족의 정신적 고통이 크고 엄벌을 원해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적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중첩된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결말 부분 사건을 해결한 탐정 에르큘 푸아로는 “(범인) 당신은 옳고 그름의 사이에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범인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설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범행 동기다. 기차 속의 범인은 소설 속 유괴사건 피해자와 복잡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이들의 관계를 하나하나 맞춰 나가는 것은 독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오리엔트 특급 살인#애거사 크리스티#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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