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영국에선 크리스마스 다음날도 쉰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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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크리스마스까지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는 매우 중요한 명절이다. 한국의 설날처럼 가족끼리 다 모여서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고, 선물 교환을 한다.

이달 초부터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문의가 끝없이 올라오고 있다. “고향에서처럼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라는 문의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답도 정신없이 올라오고 있다. 요새 한국에는 없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어도 쉽게 즐기기가 힘들었다. 서울 이태원이나 명동을 찾아가면 그나마 크리스마스의 활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많았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처럼 크리스마스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을 만한 음식을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한국에서 보냈던 첫 크리스마스는 처음이라는 생각 때문에 고향에서의 크리스마스처럼 보내려고 잔뜩 기대를 부풀렸는데 결론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다. 알아보니까 가능하기는 했지만 마치 어느 나라의 국빈을 초청하는 것처럼 큰돈이 들고, 그나마 구입하려면 일일이 자세한 계획까지 짜야 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트리와 트리 장식을 사려면, 서울 남대문시장의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 가게를 찾아내 가야 하는 식이다. 또 크리스마스 전통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암시장을 가거나 미군 부대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래서 그 당시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들이 향수를 많이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은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해마다 더 다양하고 폭넓은 물건이 나오고 있다. 오븐이 설치된 집도 많아져서 서양에서 만드는 크리스마스 음식도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재료도 과거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과거 한국에서는 도도새보다 보기 어려웠던 칠면조도 이제는 쉽게 구할 수 있고, 크리스마스 식사의 주 메뉴인 미니 양배추도 여기저기에서 다 판다. 또, 해외에서 많은 재료를 직접 구입할 수 있으니 ‘엄마 손 크리스마스 음식’도 만들 수 있다. 만약 직접 만들 생각이 없다면 초특급호텔부터 동네 양식집까지 크리스마스 음식을 파는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서울에서도 가게나 커피숍에서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또 서울 청계천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등 축제를 하고 있다. 올해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외국인인 내 눈에도 조금은 크리스마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나라에서 시간이 더 흐르면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변할까. 실제 변화할 모습은 모르겠지만 희망하는 것은 있다. 첫째는 공휴일이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다음 날인 12월 26일도 복싱(Boxing)데이라고 해서 쉰다. 이날은 옛 유럽의 영주들이 주민들에게 상자에 담은 선물을 전달한 데서 유래했다. 지금은 이날 소매점들이 재고를 없애기 위해 대규모 할인 판매를 한다. 매해 26일에 근무를 하고 있는 나는 영국에 있는 가족들이 남은 크리스마스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서운함을 느낀다.

또 크리스마스 노래가 좀 다양했으면 한다. 머라이어 캐리나 왬은 물론 좋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너무 자주 듣는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회사들도 연말에는 당연히 바쁘지만 그래도 한국만 한 분위기는 아니다. 직원들은 화려하고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고 출근하기도 하고 ‘비밀 산타’란 선물 교환도 한다.

물론 영국과 달리 좋은 점도 있다.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를 영국에서 보냈는데, 크리스마스가 너무 과하게 상업화됐다고 느꼈다. 특히 온 친척에게 선물 주는 습관이 있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았다. 또 한국 크리스마스에는 큰 매력 하나가 더 있다. 기후 때문에 누구나 다 기대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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