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관용과 다원성이 강한 리더십을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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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제국에서는 마치 씨름 시합을 여는 것처럼 종교 토론이 열리고는 했다.(중략) 씨름 시합처럼 세 명의 심판이 토론회를 이끌었는데 그들은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강자의 조건(이주희·MID·2014년) ” 》
몽골제국이 유럽을 휩쓴 뒤인 1253년 프랑스의 왕 루이 9세는 ‘공포의 대상’인 몽골과의 우호 증진을 위해 수도사 기욤 드 뤼브루크를 사절단으로 보냈다. 몽골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 도착한 뤼브루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광경과 마주했다. 도시 남서쪽에는 칸의 궁전이, 중앙에는 중국인 무역상 거리가, 북쪽엔 이슬람교도 마을이 있었다. 이슬람교도 마을을 가로지르면 기독교 교회가 나왔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앞세워 찬송가를 부르며 이슬람교도 거리를 지나쳐 교회로 향했다.

뤼브루크는 카라코룸에 머물며 이슬람교의 이맘, 불교의 승려와 토론을 벌였다. 고국에서 이교도와 토론을 벌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카라코룸에선 일반적인 일이었다. 서로의 의견은 존중됐다. 토론이 막바지에 이르면 기독교인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이슬람교인들은 큰 소리로 꾸란을 암송했다. 불교인들은 조용히 명상을 했다.

이 책은 기원전 고대로마, 몽골제국, 대영제국, 대항해 시대의 네덜란드, 그리고 지금의 미국 등 5개 초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들 나라는 공통적으로 관용과 다원성의 힘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했고, 나라 밖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게 강자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관용과 포용, 다양성이 억압되고 있다. 국가 대 국가, 국가 안의 이해집단, 국경 안 서로 다른 민족 등 서로 간의 대립은 전방위적이다. 의견이 다르거나 신념에 차이가 있으면 마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듯 으르렁대고 공격한다.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지면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 저자는 이를 두고 ‘제어장치 없는 자동차’라고 표현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라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를 자주 잊곤 한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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