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1월 1일]‘천재 뮤지션’ 유재하-김현식 세상을 등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15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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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재하(왼쪽), 김현식
가수 유재하(왼쪽), 김현식

10월 30일 배우 김주혁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연예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한국 대중음악계가 낳은 두 천재의 기일이 다가왔다. 11월 1일은 유재하(1962~87)와 김현식(1958~90)이 사망한 날. 이들은 1980년대 각각 ‘천재 뮤지션’ ‘천재 보컬리스트’로 불리며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었지만 3년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둘의 죽음은 소위 ‘연예계 11월 괴담’의 시발점이 됐다. 1995년 ‘듀스’ 멤버 김성재, 1999년 탤런트 김성찬, 2000년 탤런트 태민영, 2001년 개그맨 양종철, 2014년 탤런트 김자옥 등이 숨졌다. 이 외 클론 강원래의 교통사고, 탤런트 황수정의 마약 투여, 가수 백지영의 비디오 사건 등 굵직한 사건사고가 잇따라 11월에 터졌다.

○한국 대중음악,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뉘다


올해로 사망 30주기인 유재하. 단 한 장의 앨범 만 발표했지만 한국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한양대 작곡과 재학 중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유재하의 솔로 데뷔 앨범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1987년 8월 발매됐다. 동명 타이틀곡을 비롯해 ‘지난 날’ ‘그대 내 품에’ ‘가리워진 길’ ‘우리들의 사랑’ 등 총 9곡이 담겼다. 유재하는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했다. 오케스트라 반주를 제외한 피아노, 기타 등 악기 연주도 도맡았다. 싱어송라이터에 연주, 프로듀싱까지를 총괄하는 전천후 뮤지션이었다. 당시 불과 25세 청년이 대중음악 거장도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

특히 그는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세련된 멜로디와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한 차원 높은 음악을 선보였다. 당시 한국 트로트와 유사한 일본 엔카 등의 이른바 ‘뽕끼’가 전혀 없다. 대신 클래식,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했다. 여기에 한 편의 시를 읊는 듯한 가사, 담백하고 기교 없는 보컬까지 더해져 평론가들로부터 “한국 대중음악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재하의 노래는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세월이 흘렀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발라드곡은 유재하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그를 기리기 위해 1989년부터 열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능력있는 뮤지션을 양산했다. 조규찬, 유희열, 김연우, 스윗소로우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유재하는 앨범이 나온 지 약 두 달 만인 1987년 11월 1일 음주운전을 한 친구의 승용차에 동승했다 맞은편 택시와 정면충돌해 세상을 등졌다. 음악천재의 삶은 너무 짧았다.

○‘사랑’을 노래한 천재 보컬리스트 김현식


유재하의 장례식장에서 아끼던 후배의 죽음에 목 놓아 울었던 이가 바로 김현식이다. 두 사람은 유재하가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앨범 작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김현식은 불같은 성격 탓 후배들에게도 엄한 선배였지만 유독 유재하는 아꼈다는 후문이다.

김현식은 1980년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등과 ‘봄여름가을겨울’ 1집으로 데뷔했다.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추억 만들기’ ‘내 사랑 내 곁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김현식 특유의 거칠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 보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현식의 음악은 큰 인기를 누렸지만 개인사는 순탄치 않았다. 대마초 파문에 연루됐고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술에 의존하다 간경변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투병 중에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다. 유작인 6집 앨범 녹음에 몰두했고 병상에서도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32세 때인 1990년 11월 1일 마지막 음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김현식의 히트곡 ‘내사랑 내곁에’를 작사 작곡한 작곡가 오태호는 1991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내가 그룹 ‘신촌블루스’에서 기타를 치고 있을 때였다. 이 노래를 만들어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는데 김현식이 마음에 든다며 자기에게 이 곡을 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한 후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난 봄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됐다. 사연인즉 이렇다. 김현식이 지난해 이 노래를 발표키로 하고 일단 가녹음해 놓았다. 그러던 중 세상을 떠나 가녹음된 게 음반으로 나온 것이다.

편곡과 노래는 내가 만족할 만큼 잘됐다. 그러나 한 가지 유감스러운 부분이 있다. 노래 중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라는 대목은 사실 ‘시간은 멀어짐으로’였다. 그가 잘못 부른 것 같다. 어쨌거나 이 노래의 사연은 그의 운명과 맞아떨어졌다. 내가 이 곡에서 표현하고자 한 건 ‘사랑하기엔 좀 멀리 있고 헤어지기엔 너무 가까이 있는 어중간한 상태’였으니까….”

김현식이 마지막으로 노래한 ‘내사랑…’은 가녹음인 탓에 잡음이 있고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하지만 그 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가창력은 살아있다. 김현식의 음악이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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