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9월 21일]1999년 ‘금오신화’ 최고 판본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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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매월당시사유록’에 수록된 김시습의 초상 판화 모각본. 동아일보DB
시집 ‘매월당시사유록’에 수록된 김시습의 초상 판화 모각본. 동아일보DB

개성에 사는 사내 이생이 최랑이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신분의 차이로 부모의 반대를 겪기도 하지만 설득 끝에 혼인에 이른다. 이생이 과거에 급제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최랑은 목숨을 잃는다. 이생은 죽은 최랑의 혼령을 밤마다 만나며 위안을 얻는다. ‘금오신화(金鰲神話)’에 실린 작품 중 한 편인 ‘이생규장전’ 내용이다. ‘금오신화’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 등은 이승의 인간이 귀신, 용왕 등 환상의 캐릭터들과 만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실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소설인 셈이다.

‘금오신화’는 조선 시대 매월당 김시습(1434~93)이 한문으로 쓴 작품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졌다. 문헌들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명성은 높았으나 실체가 드러난 건 1927년에 이르러서였다. 육당 최남선이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1884년본) ‘금오신화’를 국내에 소개하면서다.

‘금오신화’ 최고 판본 발견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99년 9월 22일자 22면.
‘금오신화’ 최고 판본 발견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99년 9월 22일자 22면.

그러나 1999년 9월 21일 고려대 최용철 교수가 중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아내 공개한 ‘금오신화’ 목판본은 이보다 300년 가까이 앞선 것이었다. ‘최고(最古) 소설의 최고(最古) 판본’이었다.

“최 교수는 이 목판본의 활자가 세종 때의 갑인자와 똑같고 16세기 문신인 윤춘년이 편찬한 것으로 미루어 16세기 조선에서 간행된 판본으로 추정했다.”(동아일보 1999년 9월 22일자 22면)

앞서 학계에선 국내에서 ‘금오신화’ 필사본이 유통되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알려졌고, 그곳에서 목판으로 찍어 간행됐다고 봤다. 주로 일본 학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발견된 16세기 목판본은 최고 판본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조선에서 간행돼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됐다.

‘금오신화’는 귀신들이 등장해 ‘신(神)들의 이야기’로 보기 쉽지만 이 작품의 ‘신(新)’은 새롭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작가의 글쓰기가 당대의 작품들과 차별되는 새로움을 추구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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