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꽃은 언제나 제때 필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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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식물의 꽃은 언제나 제때 핀다. 내가 사는 곳에는 지금 부처꽃과의 갈잎중간키나무 배롱나무의 꽃이 피고 있다. 나무의 꽃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다. 배롱나무의 꽃은 우리나라에 사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핀다.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붉은 꽃이 피기 때문에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른다. 그러나 요즘 주변에는 흰 꽃이 피는 배롱나무와 보라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도 있다. 배롱나무는 한 송이 꽃이 100일 동안 피는 것이 아니라 각 송이가 차례로 피면서 100일 동안 이어진다.

배롱나무는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현종은 배롱나무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근무하는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薇省)이라 고쳐 불렀다.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 중 하나인 ‘자미’는 북극성을 의미하는 ‘황제나무’라는 뜻이다.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의 궁궐에서 배롱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황제나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배롱나무가 황제나무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북극성 북쪽에서도 가장 빛나는 자미성(紫微星)처럼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오랫동안 붉게 피기 때문이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변하지 않는 마음, 즉 단심(丹心)을 상징한다. 고려 말 정몽주가 이방원의 회유에 단심가(丹心歌)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듯이, 지금도 중국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롱나무로 조상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종묘를 비롯한 조상을 모신 전국 곳곳의 사당 마당이나 사당 문 앞에서는 어김없이 배롱나무를 만날 수 있다. 배롱나무는 꽃만이 아니라 껍질이 없는 줄기마저 겉과 속이 같은 아주 특별한 나무다.

식물의 개화시기를 얘기할 때 언제 피느냐를 묻지 않고 일찍 피는지 혹은 늦게 피는지를 묻는 것은 식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매실나무의 꽃은 일찍 피고, 배롱나무의 꽃은 늦게 핀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식물의 개화시기에 대한 인간의 자의적 판단은 한 존재를 바라보는 그릇된 인식의 결과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쫓아가는 경쟁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배롱나무는 매실나무가 언제 꽃을 피우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배롱나무는 오로지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하늘로 걷어 올려 세상을 비춘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배롱나무#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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