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동정민]정신건강에 좋은 결선투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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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프랑스인들은 지지 후보를 숨기지 않는다.”

프랑스 언론들의 여론조사는 지난달 23일 대선 1차 투표 때 상위 후보 4명의 격차까지 정확히 맞혔다. 이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자 한 50대 프랑스인이 알려준 비결이다.

프랑스인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전 국민이 ‘정치 박사’인 한국 못지않다. 프랑스 동네 사랑방인 ‘타바’(한국으로 치면 다방)는 하루 종일 대선 관련 TV 시사 프로그램을 보며 격론을 벌이는 주민들로 북적댄다. 3일 열린 양자 TV토론은 전체 국민의 4분의 1인 1650만 명이 시청했다. 투표를 독려할 필요도 없다. 80% 안팎의 투표율은 주변국인 영국 독일보다 10%포인트 정도 높다.

“아빠, 마린 르펜이 당선되면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대요. 진짜예요?”

한 주재원은 지난달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들의 친구가 반(反)이민 공약을 내건 르펜 후보를 비판하며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집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로고송도 흥얼거렸다. 그 아들은 “친구들의 요즘 주요 대화 주제가 대선”이라며 “친구들이 교실에서 마크롱 로고송을 합창해요”라고 말했단다.

어릴 때부터 가족 간에 대선에 대한 대화가 빠지지 않는 높은 관심, ‘나의 대통령은 공화국 시민인 내가 선택한다’는 열정은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리 벽에 붙어 있는 후보 포스터는 성한 것을 찾기가 힘들다. 극우 후보인 르펜은 마녀로 둔갑해 있고, ‘횡령 스캔들’에 휩싸인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수염이 난 도둑으로 둔갑해 있다. 특정 세력이 조직적으로 훼손하는 게 아니라면 그 정도 낙서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유세 때 계란이나 밀가루를 한 번씩 안 맞아본 후보가 없다. 그런 봉변을 당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후보를 평가하는 주요 항목이다. 그 정도 폭력은 일종의 민심의 표현이라는 게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마크롱 후보를 지지해도 공무원 선거중립 위반이라는 비판은 없다. 선거 이틀 전까지 여론조사 결과도 마음껏 공표된다. 다른 사람의 여론이 내 선택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공화국 시민의식에 대한 믿음이 그 바탕이다.

대선 행사들은 담백하다. 유세장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댄스 음악을 틀고 연예인을 동원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일은 없다. TV토론에 별도의 시나리오도 필요 없다. 후보 간의 치열한 설전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게 토론의 목적이다. 광고 전문가의 기발한 이미지 광고와 포스터가 늘 화제가 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의 후보 TV광고는 후보가 육성으로 공약과 비전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공통된 형식을 띤다.

선거 문화에 정답은 없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할 경우 상위 후보 2명이 2차 투표를 치르는 프랑스의 결선투표제 도입은 대선 때마다 ‘묻지 마 연대’, 대선 후에는 ‘심리적인 대선 불복’이 반복되는 한국에서도 검토해볼 만하다.

1차 투표는 당락을 고려한 전략적 투표보다 자신의 소신대로 뽑는다. 자연스레 1차 투표에서 1, 2위가 가려지면 2주 동안 치열한 검증을 거쳐 진짜 대통령을 뽑는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후보 지지자들의 표심은 새롭게 1, 2위 후보에게 반영된다. 늘 과반 득표 대통령이 탄생하는 점은 대통령에게 든든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은 “1차 투표는 가슴으로, 2차 투표는 머리로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도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가슴과 머리가 따로 놀아 고민이 많은 한국 유권자들의 정신건강에 좋을 듯싶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 대선#프랑수아 올랑드#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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