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음은 몸이 아플 때 먹는 것이다. 미음이나 물도 마시지 않는 것은 죽겠다는 시위다. 단식 투쟁이다. 속미음은 좁쌀로 끓인 미음 혹은 죽(粥)이다. 혜경궁 홍씨가 미음도 끊고 시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 5월에 홍역으로 문효세자가 죽었다(5세). ‘9월의 변고’는 문효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죽음이다. 의빈 성씨는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이제 정조의 아들은 없다. 차기 대권 향방이 오리무중이다. 혜경궁으로서는 절박했을 것이다.
진솔한 ‘미음 단식’도 있다. 영조 24년(1748년) 7월, 영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딸’이라고 불렀던 화평옹주가 죽었다. 22세. 영조는 “미음 같은 음식도 잘 넘기지 못하여 매양 답답한 때가 많다”고 한탄한다.
몸이 허약한 경우는 함부로 “미음도 먹지 않는다”고 단식을 내세울 일은 아니다. 미음은 환자식이다. 경종은 원래 몸이 약했다. 세상 떠나기 하루 전인 경종 4년(1724년) 8월 23일, ‘설사 징후가 그치지 않아 혼미하고 피곤함이 특별히 심하니, 약방에서 입진, 탕약을 정지하고 잇따라 인삼속미음(人蔘粟米飮)을 올렸다’고 했다. 인삼속미음은 인삼과 좁쌀로 끓인 죽이다. 다음 날인 8월 24일의 기록. ‘도제조와 제조가 미음(粥飮·죽음) 드시기를 권하였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세제(世弟·영조)가 청하니 임금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고, 미음을 올렸다’고 했다.
정조도 마찬가지. 조선왕조실록 정조 24년(1800년) 6월 22일의 기사. 정조가 위독하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6일 전. 화성유수 서유린이 “수라는 드셨느냐?”고 여쭙는다. 정조는 “미음을 조금 마셨을 뿐”이라고 답한다. 6월 26일에는 좌의정 심환지가 “음식은 드셨습니까?”라고 묻자 “조금 전, 흰 도라지 미음을 조금 마셨다”고 답한다.
죽은 되다. 미음은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묽다. 그 차이를 정확하게 가르기는 힘들다. 죽과 미음은 혼용했다. 영조가 세상을 떠난 직후, 신하들이 세손 정조에게 ‘죽음(粥飮)을 바쳤다’는 내용도 있다. 죽과 미음을 혼용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중국 사신은 미음을 즐겨 찾으니 큰 쟁반에 사발을 두고 미음을 담는데 잣죽(果松粥·과송죽)이든 깨죽(胡麻粥·호마죽)이든 모두 좋다’고 했다(목민심서 예전). 미음과 죽을 혼용한 것이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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