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집 밖에서 인사 못 해도 혼내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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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외출을 하려고 엘리베이터에 탄 민수(만 5세)와 엄마. 6층 문이 열리며 이웃 아줌마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다. “어머, 민수구나. 안녕, 어디 가니?” 민수 엄마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민수의 어깨를 툭툭 친다. 어서 인사하라는 신호다. 그런데 민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뒷걸음질을 친다. ‘어휴∼ 또 시작이네. 집에서는 활발하다 못해 난리법석을 피우는 녀석이 밖에만 나오면 왜 저러는 거야. 매일 보는 사람인데 인사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엄마는 민수를 끌어내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못하니? ‘안녕하세요’라고 말도 해야지!”

 아이가 누굴 만나든 인사도 잘하고 상냥하면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참 흐뭇하다. 반대로 어른이 먼저 인사를 하는데도 아이가 얼음이 된 듯 뚱하고 있으면 무척 어색하고 민망하긴 하다. 그래서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예의 없는 태도를 비난하고 혼내며, 억지로 인사를 시키곤 한다. 이것은 아이가 ‘인사를 모른다. 인사를 안 한다’라는 전제에서 하는 행동인데,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 집에서는 활발한데 밖에만 나오면 부끄럼쟁이가 되는 아이들 중 많은 수는 그 상황에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알지만 지나친 긴장과 높은 불안으로 몸이 얼어붙어서 그 다음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저를 잡아먹나. 뭘 그렇게 긴장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때 아이들이 느끼는 긴장과 불안은 엄청난 고통 수준이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조차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조금 긴장하고 불안이 높아진다. 아주 본능적인 반응으로 상대가 아직 안전하다고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이런 긴장과 불안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높다. 그래서 상대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린다. 어떤 아이들은 순간 얼어붙어 고개도 숙이지 못한다. 눈은 상대방 얼굴을 보고 있는데, 표정이 너무 굳어서 화가 나 있는 듯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무례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도 많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보통 커가면서 조금씩 완화되는데 지나치게 심한 것 같다면 부모가 애써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가장 나쁜 양육법은 혼내고 억지로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다음번에 인사가 더 어려워진다. 혼나고 억지로 했을 때의 부정적인 경험까지 더해져 긴장과 불안감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게 하려면, 아이의 긴장과 불안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아이가 느끼는 정서 상태를 알아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부모가 생각하는 완벽한 인사법이 아니라 아이가 하기 쉬운 방식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네가 다 알고 있지만, 순간 얼어붙어서 하기 어려운 것 엄마가 알고 있어. 너도 힘들 거야. 네 마음이 아무리 그렇지 않아도 상대가 오해할 수 있거든. 너도 조금 반응을 해줘야 해. 손을 까닥하든 고개를 끄떡하든 이런 정도라도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인사를 했을 때, 다시 큰 소리로 하라거나 고개를 더 숙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다음에는 하자. 이 아줌마 얼굴 잘 봤지? 아줌마 만나면 다음번엔 하자”고 그러든가 처음에 만났을 때 인사를 못 했으면 “이따가 헤어질 때는 해보자”라고 해준다. 그 사람과 5∼10분 정도 얘기를 하고 헤어질 때 엄마가 먼저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하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그러면 아이도 가볍게 손은 흔들 수 있다. 아이가 그 몇 분 동안에 마음을 진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장되고 불안한 상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아이가 진료실을 나갈 때 손을 어색하게 한 번 들어도 “잘하네. 다음에 또 보자” 한다. 엄마들이 “야, 뭐야. 원장님한테 버릇없이. 다시 해”라고 시키면 “다시 시키지 마세요. 아주 잘한 거예요”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가 나를 훨씬 편안하게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어떻게든 인사를 하려고 한다. 정말 예의가 없어서 인사를 안 하는 것인지,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서인지, 잘 관찰하면 부모는 보인다. 후자라면 도와줘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동심리#양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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