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브랜드 키우기, 브랜드 지키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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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원 산업부 차장
주성원 산업부 차장
 자동차 산업을 담당하던 2005년, 포드의 신형 세단 ‘파이브헌드레드’를 시승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성능이나 디자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나치게 큰’ 트렁크 공간이었다. 수입사가 “트렁크에 골프백 8개가 들어간다”고 홍보했을 정도다. 보통 4명이 한 조인 주말 골프에서, 거기에 5인승 승용차에 어째서 골프백을 8개나 실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으나, 독특한 콘셉트로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것은 분명하다.

 아쉽게도 이 ‘넉넉한 차’의 수명은 불과 4년(미국 판매 기준 2004∼2007년)에 그쳤다. 사실 파이브헌드레드는 포드가 중형 세단 ‘토러스’를 대체하기 위해 크기와 성능을 업그레이드해 내놓은 브랜드다. 하지만 파이브헌드레드라는 브랜드가 시장에 자리 잡기에는 이전 모델인 토러스의 브랜드 인지도가 너무 높았다.

 토러스는 1985년 선보인 뒤 한때 미국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차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변경한 디자인에 혹평이 쏟아지며 판매가 크게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포드는 이 차를 렌터카 회사에 대량 납품하면서 ‘렌터카 세단’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여 버렸다. 브랜드 이미지는 급락했다.

 그래서 포드는 4세대를 끝으로 토러스 브랜드를 없애기로 하고 구원투수로 파이브헌드레드를 등판시킨 것이다. 결과는 앞서 설명한 대로 실패. 포드의 다음 조치는 ‘전통의 브랜드’ 토러스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파이브헌드레드 광고비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 원)를 허공에 날린 뒤의 일이다.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 사례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최근 위기에 몰린 한국 대표 브랜드들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는 노트7 단종 사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자동차 ‘쏘나타’도 미국에서는 소비자 보상 문제로, 한국에서는 국토교통부의 세타 엔진 조사 등으로 문제가 됐다.

 스마트폰 후발주자인 갤럭시가 아이폰의 유일한 경쟁자가 되기까지, 또 쏘나타가 1985년 이후 30년 이상 같은 이름을 고수하면서 베스트셀러로 올라오기까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브랜드들은 스스로 내세웠던 정체성이 훼손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갤럭시는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실제로 노트7에서도 홍채인식 같은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지만 기본 성능인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소비자 신뢰를 상당히 잃게 됐다. 쏘나타는 ‘10년 품질 보증’을 무기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오히려 품질과 보증 문제가 불거지면서 거액을 배상할 처지에 놓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은 이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와 더불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목표 달성에 급급해, 또는 성급한 문제 해결에 집착해 기본을 놓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시점이다.

 앞서 언급한 포드의 사례가 힌트를 준다. 포드는 왜 토러스의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는데도 이 차를 렌터카 회사에 대량 납품해 사태를 키웠을까. 기본에 대한 고민과 성찰 없이 어떻게든 판매 실적을 유지하려는 경영진의 선택 때문이었다. 브랜드를 키우는 것은 마케터의 역할이지만, 지키는 것은 경영자의 몫이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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