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8>존엄한 인간, 당대의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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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 ‘야코프 마이어의 초상화’
한스 홀바인 ‘야코프 마이어의 초상화’
초상화는 15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 확산되었습니다. 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기 초상화는 환영받지 못했지요. 초상화 제작과 소장을 신의 뜻에 어긋난 허영으로 여겼거든요.

세계관의 변화가 초상화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14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인간다운 인간을 시대의 이상으로 삼았던 고대의 정신세계로 돌아가고자 했어요. 인간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편적 일상을 현실로 수용하려 했지요. 인간을 신분과 운명에 지배받는 존재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와 의지를 주관하는 존엄한 주체로 여겼습니다. 변화된 인간관과 함께 초상화를 보는 부정적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한스 홀바인(1497∼1543)은 북유럽 사회가 인간 존엄에 눈뜬 시기의 초상화가였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와 활발히 교류했던 인문학자들이 그의 예술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간에 예술적 관심을 두었던 화가는 인물의 개성적 묘사가 탁월했지요.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출중했어요. 인물의 형상을 빌려 참된 인간의 본성을 전하고자 고결한 인간의 영혼에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야코프 마이어의 초상화’는 주문 그림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완성한 화가의 초기작이었습니다. 주문자이기도 했던 그림 속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손가락에 낀 여러 개 반지가 상당한 재력가임을 알려줍니다. 손에 쥔 동전이 금융업 종사자임을 나타냅니다.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어 학문과 대학의 도시, 바젤의 시장이 된 인물이었지요. 귀족 태생이었던 지금까지 시장들과 달리 스위스 용병 출신이어서 화제가 되었어요. 더 펼쳐야 할 원대한 포부를 향한 시선일까요. 귀족이 아닌 그가 높은 곳을 응시 중이군요.

신분제 강화를 주장하며 인간을 ‘개와 돼지’에 비하한 망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 이런 허튼소리를 한 당사자에게 ‘기생충과 벌레’라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격한 막말이 오가는 사이 인간의 존엄도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웅장한 산과 거대한 파도, 광활한 우주와 별의 움직임에 감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그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초상화 속 존엄한 인간, 당대의 얼굴이 부럽기만 합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한스 홀바인#야코프 마이어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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