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양극화 상업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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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입 달린 사람마다 양극화(兩極化)를 말하는 시대다. 20∼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도 초점은 여기에 맞춰졌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모두 양극화 해소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같은 하늘을 바라볼 때 다른 하늘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것이 기자의 본성이다. 이들에게 양극화 해소는 시대정신일까, 아니면 ‘시대의 패션’일까. 이들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시대정신? 시대의 패션?

4선인 정 원내대표는 부친인 정석모 전 의원(10∼15대)에 이어 부자 10선(選) 기록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금수저’다. 올해 재산 신고액이 44억 원. 공직자 신고 기준에 따른 재산은 실제 액수의 절반 이하라는 게 정설이다.

김 대표는 여야를 넘나든 비례대표 5선 기록 보유자. 능력도 있지만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역시 금수저 출신. 올해 신고 재산 88억 원. 특이하게도 금괴를 8.2kg(3억여 원어치) 갖고 있다.

역시 금수저인 안 대표의 지난해 신고 재산은 787억 원. 안랩 주식의 절반을 기부하는 바람에 줄어든 게 그만큼이다. 그런데 올해는 주가가 올라 두 배가 넘는 1629억 원으로 뛰었다. 재산 기부 전인 2014년의 1569억 원보다 오히려 늘었다.

여당 원내대표로는 선구적(?)으로 지난해 교섭단체 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지적했던 유승민 의원도 부친이 국회의원(유수호·13, 14대)을 지낸 금수저. 신고액은 지난해 35억 원에서 올해 44억 원으로 9억 원가량 늘었다.

금수저라고 해서, 재산이 많다고 해서 당의 대표로 나선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주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당이, 아니 자신이 먼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울림이 생긴다.

금수저와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양극화는 내년 대선에서도 첫 번째 화두로 예상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다. 다만 정치인들이 입을 맞춘 듯, 양극화를 주워섬기는 것은 그것으로 얻는 정치적 이득이 있기 때문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것도 모자라 대물림까지 하려는 국회의원과 법조인, ‘노(勞)피아’는 기득권을 내려놓은 뒤 양극화를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65세 정년에 든든한 연금, 노후 걱정 없는 강남좌파 교수가 ‘격차 해소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해도 노후 불안에 떠는 소시민은 ‘그래 너 잘났다’로 듣는다.

50대 초반인 대기업 고참 부장 A 씨. 그는 요즘 들어 ‘내 인생의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채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입사 동기들은 거의 다 회사를 나갔고, 남은 동기는 임원을 달았다. 부쩍 ‘자리를 치워줬으면…’ 하는 노골적인 압력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기득권 내려놓고 말해야

A 부장은 어릴 때 ‘신동’ 소리까진 못 들었지만 공부를 잘했다. 서울대는 아니지만 명문대를 나와 평생 열심히 일했다. 자식은 한 해 2000만 원이 드는 기숙학원까지 보내 서울의 알 만한 대학을 나왔지만 취업을 못한다. 노후 대비라고는 서울 강북의 집 한 채와 예금 약간, 65세쯤이나 돼야 나오는 알량한 국민연금이 전부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채웠을까….’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양극화#정진석#새누리당#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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