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투수가 시간 끌면 타자는 웃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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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에게는 투구 간격(인터벌)이 짧은 게 유리합니다. LG 봉중근(36)이 올 시즌 옛 명성을 되찾으려면 몸무게뿐만 아니라 인터벌도 줄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봉중근은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에서 인터벌이 가장 긴 투수였습니다. 봉중근이 공 하나를 던지고 나서 다음 공을 던질 때까지 평균 33.7초나 걸렸습니다.

2004년과 2006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요한 산타나(37)에 빗대 ‘봉타나’라는 별명을 얻은 그였지만 지난 시즌에는 마운드에서 자신 없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 그래서 상대 타자에게 쉽게 공을 던지지 못했던 걸까요?

당연히 결과도 나빴습니다. 봉중근을 상대한 타자들의 기록을 모두 더하면 OPS(출루율+장타력) 0.787이 나옵니다. 지난해 타자들은 봉중근을 상대할 때는 국가대표 유격수이자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두산 김재호(31·OPS 0.789) 수준이 됐습니다. 겨우내 절치부심한 봉중근은 몸무게를 10kg 가까이 빼면서 권토중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봉중근뿐만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투구 간격(33.3초)이 길었던 두산 노경은(32) 역시 지난해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전까지 3년 연속으로 100이닝 이상을 던졌지만 지난해에는 58과 3분의 1이닝밖에 던지지 못했습니다. 노경은도 “불펜 피칭은 좋은데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면 힘을 못 쓴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인터벌이 긴 투수들은 사실 자신감이 부족한 겁니다. 상대 타자와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제아무리 주장해도 실제 결과를 보면 기 싸움에서 밀렸습니다. 군사용 레이저 기술로 투·타구 정보를 알려주는 애슬릿미디어 ‘트랙맨 베이스볼’은 투구 간격도 초 단위로 기록합니다. 이 회사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보면 투구 간격이 길면 길수록 상대 타자 기록만 올라갑니다.

이런 경향은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투구 간격이 길수록 상대 타자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지난해 저는 이 칼럼을 통해 메이저리그 데이터를 소개하면서 “한국은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고 썼는데 이번에 한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향이 지난해보다 더 ‘진리’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통계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투구 인터벌 하나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준 삼성 코치(54)처럼 기나긴 인터벌로 통산 97승이나 거둔 투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그 어떤 플레이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투수가 빨리 공을 던지겠다고 하면 타자도 빨리 타석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주도권을 잡아야 투수에게 유리합니다. 그걸 ‘빅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똘똘한 투수라면 공을 빨리빨리 던지는 게 옳은 선택입니다.

공을 빨리 던지면 경기 시간도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한 경기에서 양 팀 투수들이 던진 공은 평균 309개. 투수들이 인터벌을 2초씩만 줄여도 경기 시간을 10분이나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던지면 타자들의 성적이 내려갈 확률, 그러니까 투수들의 성적이 올라갈 확률도 높습니다. 그러니 투수 여러분, 포수한테 공을 받으면 빨리빨리 던져주세요. 그게 여러분의 퇴근 시간을 앞당기고 연봉은 올려 받는 길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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