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현장에서 통하는 R&D혁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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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제조업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날로 격화돼 가는 글로벌 경쟁구도 속에 환율 리스크 등 대외여건마저 악화되면서 우리 제조업이 성장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첨단 기술과 노하우로 무장한 선진기업과의 경쟁이 쉽지 않은 터에 날로 기술력을 더하고 있는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더 이상 가격경쟁력과 적기 납기만으로는 중국 등 신흥 강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차별적 경쟁우위 요소를 창출하고 지속적인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 혁신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 전반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선결돼야 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R&D 성과가 가시화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한정된 재원과 자원을 고려할 때 만족할 만한 투자를 적시에 집행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전체 기업 중 수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만족할 만한 연구개발 조직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연구개발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을 위한 맞춤형 R&D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이 원하는 현장밀착형 연구개발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제 수요를 염두에 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수요 기업의 요구에 맞춰 개발 과제를 선정하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이전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을 전문 연구진의 도움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연구기관으로서도 쓸모가 없어 사장되는 기술개발에 시간과 재원을 낭비하지 않아 이득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기관에서 진행한 기술개발 성과 가운데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거나 현장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은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슈퍼 IP(지적재산권)사업’은 이런 맥락에서 출발했다. 기업이 주문한 기술 중심으로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특허 등 개발이 완료된 성과물은 해당 기업에 이전한다. 필요한 경우 기업과 함께 해당 기술에 대한 공동 마케팅에 나서고 특허 관리와 표준화, 사후관리체계 구축도 지원한다. 사업 시행 이후 지원을 의뢰한 기업의 만족도가 한층 높아졌을 뿐 아니라 개발 후 활용되지 못한 채 골칫거리로 남아 있던 휴면특허를 줄일 수 있어 연구원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해외 12건을 포함해 49건의 국내외 특허가 출원됐다. 19건의 기술이 기업에 이전돼 연구원이 기술료로 거둬들인 수입만 34억 원에 달한다. 연구생산성도 30%를 넘겨 평균 10%대 안팎인 선진국 수준을 훨씬 앞지른 것도 고무적인 성과다. 무엇보다 개발된 기술을 넘겨받은 기업이 이를 매출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당장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경쟁이 치열해지고 첨단 기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아질수록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해당 산업 분야에 최적화돼 있으며 현장의 필요가 충실히 반영된 기술개발 성과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높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중소기업과 연구기관 간의 진정한 상생 역시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제조업#r&d#연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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