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국가 주도의 전작도록 사업, 민간에 넘기는 게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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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미술에 관한 한 한국은 ‘기록이 없는 나라’였다. 그렇다보니 서양에서 작가 연구에 필수적인 기록물로 인식되는 전작도록(全作圖錄·카탈로그 레조네) 발간의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전작도록은 작가의 생애, 작품 연도, 크기, 상태, 전시 이력, 소장처, 비평, 논문, 학술적 연구물 등이 상세하고도 정확히 기록된 책자다. 문화 선진국에서는 여기에 수록된 작품만을 진본으로 인정한다.

한국이 전작도록 불모지가 된 것은 특정 작가를 연구하는 전문가도, 기초연구에 필요한 예산도, 시스템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대표 작가의 전작도록 사업에 착수하고 10명 작가 중 이중섭과 박수근을 첫 대상으로 선정했다. 문제는 정부가 사업 지원이 아니라 저작권과 출판권을 갖는 사업 주체로 나섰다는 점이다. 국가가 전작도록 출판사와 서점 역할을 맡고 판매수익금을 다시 국고로 환원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향후 큰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높다.

위작 논란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장을 지낸 위작 감정의 대가 토머스 호빙은 “15년간 일하면서 미술품 약 5000점을 검사했는데 이 중 무려 40%가 위조품이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최고의 감정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진위 감정이다. 그러나 국민은 국가가 발행한 전작도록에 수록된 작품을 진품보증서로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위작이 포함되었다고 가정해보라. 국가가 검증한 전작도록을 믿고 경매나 화랑에서 거액을 주고 위작을 산 구매자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정부는 망신을 당하게 된다. 전작도록 수록에 따른 각종 압력과 시비에도 휘말리게 된다. 유명 작가 전작도록에 포함되면 작품가치가 높아지고 가격도 엄청나게 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잭슨 폴록 전작도록권을 가진 잭슨폴록크레스너 재단이 임명한 잭슨폴록크레스너 감정위원회는 전작도록에 수록해 달라는 소장자의 요청을 진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해 세 번이나 고소를 당했다. 세 번 모두 위원회가 승소했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었다.

민간재단도 이런 어려움을 겪는데 정부가 얼마나 많은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할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3년간의 연구 기간이 끝난 이후 지속적인 업데이트도 해결해야 할 걸림돌이다. 현재는 자료를 수정 및 보완하는 일을 책임지는 전문가가 없는 실정이다.

폴록 전작도록 공동 저자인 엘런 랜다우와 유진 소를 롤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과거도 지금도 업데이트하고 미래에도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전작도록 사업의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다수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록이 없는 미술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오류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전작도록#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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