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好통]위작논란 파문, 작가의 책임은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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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 기자
손택균 기자
“이 그림의 색채는 단순한 와인 빛깔이 아니다. 여러 색을 섞어 고심 끝에 처음 내놓은, 품위 있게 숙성된 나만의 색깔이다.”

지난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2013’ 라벨 그림 언론 공개 행사에 참석한 화가 이우환 씨(80)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1945년부터 매년 화가 한 명에게 라벨 그림을 의뢰해 온 이 고급 와인 가문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빙된 그는 “오래 기다린 기회였다”며 긴 소회를 풀어 놓았다.

행사 말미, 참석한 기자들에게 단 두 번의 질문 기회가 주어졌다. 한 기자가 “올해 초 발생한 ‘가짜 감정서 첨부 그림 경매’ 사건 이후 일파만파 확대된 위작 논란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고 물었다. 이 씨는 짤막하게 답했다.

“일절 답하지 않겠다. 변호사와 상의하라.”

변호사를 거쳐 정리된 위작 논란 관련 질의응답 보도자료가 2일 공개됐다. 요지는 “위작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작가”라는 것. 이 씨는 자료에서 “위작 사건과 관련해 인터뷰를 거부해 온 건 그간 몇 차례의 인터뷰 내용이 작가의 뜻이나 말과 달리 보도돼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4년 한 일간지 인터뷰 기사에는 “시장에서 나를 제거하고 작품 값을 떨어뜨려 이득 보려는 세력이 있는 듯하다. 내 작품은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에 모방하기 어렵다”는 발언이 실렸다. 지난해 10월 한 주간지 인터뷰 내용은 “내가 눈으로 확인한 그림 중에는 위작이 없다고 말한 건데 ‘가짜가 없다’고 했다는 식으로 보도됐다. 실망감이 커 ‘중대 결심’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2005∼2014년 국내 경매 낙찰 총액 1위(약 712억 원)의 인기 작가다. 위작 논란이 벌어진 것은 5년 전부터다. 그때마다 ‘작가가 적극 나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감정 전문가는 “이 씨는 2013년 위작 논란이 일자 자신의 작품 감정 권한을 오랜 거래처인 두 화랑에만 제한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제 와서 ‘내가 최대 피해자’라고 하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경매에서 가짜 감정서라는 뚜렷한 위조 증거가 포착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2주 뒤에야 이 씨는 변호사를 통해 “위조품이 존재한다”고 밝히며 대응을 시작했다.

이 씨는 “위작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작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랜 위작 논란으로 인해 피해를 본 컬렉터들이나 미술 시장 위축에 대한 염려는 답변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가 우선 할 일은 늑장 대응으로 위작 논란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 자신의 책임을 되새기는, 진심 어린 사과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위작#작가#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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