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마더 미라사’는 왜 분대장이 되지 못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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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의 분석에 따르면 남성은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에 처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싸움 아니면 도망(fight or flight)’이다.

반면 여성은 ‘배려와 사교(tend and be friend)’로 부드럽게 대응한다. 친구를 늘림으로써 어려운 국면을 함께 헤쳐 나가려는 것이다.

MBC 주말 예능 ‘진짜 사나이―여군특집3’에서 여성 출연자들이 그렇다. 훈련소 첫날, 군기에 압도당한 여성들은 침묵 속에서 눈치만 살피고, 화면 밑에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자막이 흐른다. ‘빨리 친해지고 싶어.’

이 프로에서 ‘배려와 사교의 여왕’은 단연 전미라다. 테니스 국가대표를 지낸 경험을 살려 다른 출연자들의 운동화 끈을 꿰어주는가 하면 쓰레기 처리 같은 뒷정리를 도맡는 등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한국말에 익숙지 않아 퇴소 위기에 몰린 교포 출신 동료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제작진은 마더 테레사에 빗대어 ‘마더 미라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지난주 방송에서 전미라는 분대장에 자원했으나 동료들의 표결에 따라 선출되지 못했다. 4표를 받은 신소율이 분대장이 됐다. 전미라는 3표였다.

남자들의 세계였다면 ‘일 잘하는 맏형’이 분대장을 맡아 통솔하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맏언니 전미라는 솔선수범 리더십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대장으로 선택받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출연자들의 표결은 설정이나 대본이 아닌 각자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만약 훈훈한 속사정, 이를테면 ‘전미라가 너무 힘들까 봐’, ‘소대장에게 초장부터 찍힌 신소율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자는 차원’ 같은 게 있었더라면 제작진이 놓쳤을 리가 없다.

여성 시청자들에겐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남성 관점에선 이상하게 보이는 마더 미라사의 분대장직 도전 실패. 우리는 이 대목에서 빨리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친해지는 게 쉽지만은 않은 여성들의 묘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연공서열과 능력이라는 수직적 질서의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서로 보살핌을 주고받는 수평적 관계 속을 살아간다. 여성 사이에선 돋보이는 이가 오히려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다. 전미라는 체력검정에서 우수함을 입증한 데 이어 화생방 훈련에서도 유일하게 관문을 통과했다.

여성 호르몬 옥시토신은 결속력과 이타심을 끌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르며 뛰어나기까지 한 사람’에게는 배타적인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전미라를 포함해 각자 개성이 뚜렷한 여성 출연자들이 ‘배려와 사교’를 발휘해 어떤 훈훈한 결말을 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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