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예산-인허가권 남용… 民 울리는 ‘官의 甲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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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대학특성 무시한 방침 강요… 지자체, 기업들에 부당한 계약 요구
국가경쟁력과 정부신뢰도 떨어뜨려

지방대에서 처장직을 맡고 있는 A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주말에 제대로 쉰 적이 없다. 교육부가 대학 평가 등급에 따라 정원을 줄이겠다고 예고한 후 각종 보고서를 만드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이 더 컸다. 교육부의 평가계획에 맞춰 한창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가 갑자기 교육부가 평가기준을 바꿔 새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갈지(之)자 행보를 했지만 대학들은 제대로 항의조차 못 했다. 대학들에 교육부는 최고의 갑(甲)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목을 매는 약 9조 원의 고등교육 예산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재정지원사업과 정원 감축을 연계하고 나선 상황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교육부는 이공계 정원을 늘리라거나 특정 사업의 예산을 받고 싶으면 취업이 잘되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라는 식의 일괄적 지시를 수시로 내린다”며 “대학들이 학교 특성에 맞게 정원을 조정하고 싶어도 교육부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불합리한 조치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민(民) 위에 군림하는 관(官)의 행태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6일 중앙정부의 각 부처와 사정(司正) 기관, 전국 243개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 316개 공공기관 등 소위 ‘관’으로 불리는 정부기관의 불공정행위를 취재한 결과 상당수 기관이 △예산집행권 △인허가권 △관리감독권 등을 남용해 민간을 상대로 ‘갑질’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득이 가지 않는 갑질이 많다 보니 민간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행정소송에서 정부의 패소율이 매년 11∼14%로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정부 부처는 예산 집행권을 무기로 삼고 있다.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하거나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기 일쑤다. 담합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경쟁당국이 일단 과징금부터 매기다 보니 소송으로 맞서는 기업도 매년 늘고 있다.

관의 이런 행태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정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5월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부효율성은 2계단 하락해 3년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중 26위에 불과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공직사회가 규제 권한을 남용해 갑질을 일삼으면 국가경쟁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재직 중에 민간으로부터 향응을 받으려고 하고 퇴직 후에는 낙하산으로 민간에 내려가려는 행태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김희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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