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꽃보다 할배할매”… 배낭여행 노부부 크게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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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관광 달라졌네

대학생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배낭여행은 직장인을 넘어 노년층에게도 확산되는 추세다. 노인들의 해외 배낭여행을 주제로 만든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대학생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배낭여행은 직장인을 넘어 노년층에게도 확산되는 추세다. 노인들의 해외 배낭여행을 주제로 만든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변화의 물결 밀려온다/들끓는 욕구 새질서 확립 불가피/신정 해외 관광 8천여 명’

1989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인 ‘다양화사회’ 연중기획의 제목이다. 이날은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날이기도 하다. 그 이전에는 정부가 외화 유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제한적으로만 해외여행을 허용했다.

1989년 한 해에 한국에서 121만3112명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한 달에만 120만∼150만 명씩 해외로 출국하는 지금 기준에서 보면 숫자가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1년 전인 1988년 해외여행 출국자 수가 72만5276명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그 증가세는 폭발적이라 할 만했다. 그간 꿈처럼 생각했던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도와 법적인 문제로 1980년대에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대부분 출장이나 연수 등을 통해 잠시 여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관광공사의 당시 ‘전 국민 여행 동태 조사’ 등 자료에 따르면 1990년 해외여행 동반자는 ‘직장 동료 또는 직장 단체’가 43.0%로 가장 많았고, 가족 동반(25.6%), 혼자서(19.8%) 순이었다. 배낭여행은 꿈같은 얘기였다.

해외여행 자유화로 배낭여행이 가능해지자 국내 ‘배낭여행’ 1세대가 생겨난다. 배낭여행 경험이 없던 이들은 주로 ‘무작정 떠나고 보자’는 식이었다. 마치 무전여행처럼 유럽행 왕복 항공권만을 구입한 채 혼자 훌쩍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고, 여러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등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4, 5년 정도 지나며 서서히 이런저런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숙소, 교통편 등 일부 일정을 미리 결정하거나 가이드가 동행하는 등 일반 패키지 여행상품과 절충된 상품이 등장한 것. 또 목적지도 기존 유럽 일변도에서 벗어나 서서히 인도 호주 네팔 등으로 다양해졌다.

배낭여행 붐을 이끈 계층은 당연히 대학생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호기심이 많았던 데다 경제성장기에 자라나 해외여행도 낯설지 않게 받아들였다. 과외 지도를 허용하면서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것도 한 원인이다. 1992년 중반까지 국내엔 10여 개의 배낭여행 전문 업체가 속속 생겨나 안전한 숙소와 언어연수, 자유시간을 함께 제공하는 다목적 상품을 앞다퉈 선보이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가면서 배낭여행 유행이 대학생을 넘어 직장인들 사이에도 퍼진다. 휴가를 몰아 쓰는 풍토가 생기면서 대학생만큼 긴 시간은 아니지만 경제력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 것이다.

커가기만 하던 해외여행 시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함께 급격히 움츠러들게 된다. 전 사회적으로 ‘지나친 외화 낭비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일면서 해외여행과 어학연수도 돌연 사치나 과소비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변의 눈총에 계획했던 배낭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신혼여행도 과거처럼 다시 국내로 떠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

이후 경제가 회복되고 2000년대를 맞으면서 해외여행은 다시 활발해진다. 특히 여행이 ‘일탈’보다는 하나의 생활패턴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여행방식이 나타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호텔팩과 에어텔이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굳이 가이드가 없어도 여행정보를 쉽게 얻게 된 사람들이 항공권과 숙박만 예약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상품을 찾게 된 것이다.

또 취업시장에서 대학생들의 ‘스펙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워크캠프’ 등 해외 봉사활동과 함께 해외여행을 겸하는 사람도 늘었다. 해외로만 향하던 눈을 국내로 돌려 ‘국토대장정’처럼 ‘내 나라’를 속속들이 여행해 보려는 사람들도 생겼다. 발상의 전환이랄까.

지난해 해외여행 출국자 수는 1608만여 명.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특히 장·노년층인 해외여행객이 부쩍 늘고 있다. 2009∼2014년 전체 해외여행 출국자가 약 69% 늘어난 데 비해 51세 이상 출국자 수는 203만3902명에서 407만289명으로 100% 넘게 늘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더해 장·노년층의 건강상태도 예전에 비해 좋아지면서 배낭여행에 도전하는 ‘할배’, ‘할매’들도 늘고 있다. 이제 외국에서 부부가 주름진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낯설지 않은 시대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해외#배낭여행#꽃보다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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