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앤젤리나 졸리 그리고 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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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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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리나 졸리 동아일보DB
앤젤리나 졸리 동아일보DB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몸이 중요한 적은 없었다. 전통 사회의 농민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매혹된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육체를 감상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은 자기 몸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몸은 오로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생산적 노동의 도구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육체는 완전히 과오와 우매와 공포 그리고 야욕에 찌든 노예였다. 플라톤은 우리가 육체에 휘둘리는 한 순수 인식을 가질 수 없으므로 주인인 영혼이 육체를 지배해야 하고, 가능한 한 육체와 어울리기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육체는 열등하고 정신은 고상하다는 사상은 중세 기독교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모든 잘못의 시작은 음욕이고, 음욕은 육체를 매개로 충족되므로, 육체는 모든 죄악의 근원이었다. 중세 신비주의 이래 현대까지 내려오는 여성에 대한 깊은 경멸과 차별도 여성은 몸적 존재이고 남성은 정신적 존재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육체는 죄짓는 살이었고, 산업사회에서는 단순히 노동력이었다면, 현대 사회에서 육체는 사유재산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한편으로는 자본, 다른 한편으로는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아름다운 용모와 멋진 몸매는 위세(威勢) 상품처럼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신분을 규정해 준다. 자신의 몸을 잘 보살펴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면 우리는 유행의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 중세 기독교 문명에서 영혼의 도야를 게을리하면 신이 벌을 내리듯 현대문명에서는 몸 관리를 게을리하면 육체가 벌을 내린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내면 깊이 각인된 거의 종교적인 두려움이다.

그러나 사회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매를 가꾸는 운동은 그 어떤 경제적 노동보다 더 힘겹고 소외적인 노동이다. 헬스클럽에서 땀 흘리며 무거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처절한 몸짓은 고대 갤리선(船) 죄수들의 강제 노동과 다를 바 없다. 성형 수술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거식증으로 굶어죽는 여성들이 속출하여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너무 마른 모델을 패션쇼에 출연시키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나올 정도이다. 이 정도면 거의 자기 몸에 대한 학대라고 해도 좋겠다.

보드리야르는 이것을 죽음에의 충동으로 해석한다. 인간에게는 원래 육체에 대한 공격성 또는 자기 파괴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톨릭교에는 대림절(待臨節) 중의 단식 혹은 참회 화요일 후 사순절 중의 금육(禁肉) 등 집단적 금식(禁食)의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육체에 대한 공격적 충동을 집단적 의식(儀式) 속으로 흡수하는 기능이었다. 세속화된 현대인들은 이 모든 의식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자기 파괴의 욕구는 그대로 남아서 그것이 과도한 몸매 가꾸기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앤젤리나 졸리가 멀쩡한 난소를 수술로 제거했다. 난소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가 있어서 예방적으로 뗐다고 한다. 2년 전에도 같은 이유로 양쪽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유전자 과학의 승리 혹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멀쩡한 장기를 떼어내는 그 과감한 행동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미친 신도를 보는 것만큼이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강박증에 의한 자기 파괴의 욕구가 아닐까’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안젤리나 졸리#난소암#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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