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행세하고… 편 갈라 낙인찍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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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탐사기획 프리미엄 리포트/강경파의 나라]
반대 주장에 ‘○○빠’ ‘꼴통’ 공세… 논리 빈약할수록 감정자극 선동

이번 실험에서 A그룹 도우미는 “내가 미술사 전공”이라는 거짓말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권위에 의존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A그룹 도우미가 실제로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림의 제목이 ‘불만’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강경파도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이번 실험처럼 각종 논리 오류를 범하며 상대방을 압박하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인 것이 ‘편 가르기’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뤄지는 논쟁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다 ‘○○빠’들” 같은 댓글이 많이 올라온다. 서로를 ‘수꼴’과 ‘좌빨’로 비난하기도 한다.

논리학에서는 이 같은 오류를 ‘우물에 독 풀기(원천봉쇄의 오류)’라고 한다. 발언의 근원에 ‘독’을 풀어 버리기 때문에 더이상 대화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너 알바지?”라는 댓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올린 사람이 돈을 받고 그런 댓글을 썼다는 의심을 하는 것인데 이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들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건강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

비합리적인 강경파들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에 기대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인 것이 원초적인 욕구인 안전이 위협당하는 공포를 자극하는 수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군대 내 폭력과 가혹행위를 비롯한 후진적 병영 문화를 개선하고 사병 인권을 신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시기상조” “안보를 흔든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군 개혁이 강군(强軍)을 만들 수 있음에도 안보 공포에 기대어 개혁을 반대하는 것. 2008년 광우병 사태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9.9%”라는 식의 비과학적인 주장이 먹거리 안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며 급속히 확산됐다.

‘마음의 사회학’의 저자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공론장의 파행이 “사회적인 분노와 고통이 올바르게 해소되지 못해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마땅히 전파돼야 할 목소리가 묻히는 일이 반복되면서 당사자들이 결국 악을 쓰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강경파#전문가#감정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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