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미의 한국 블로그]“병원비가 선불이라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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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형 병원의 진료비 수납 창구. 동아일보DB
한국 대형 병원의 진료비 수납 창구. 동아일보DB

가와니시 히로미
가와니시 히로미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알아보고 싶은 시설은 병원이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한 한국은 의료기술도 높고 설비도 좋다고 들었는데,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 가 보고 과연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넓은 공간과 차분한 인테리어는 기본이고 패스트푸드점부터 유기농 전문가게까지 있었다. 나를 인솔해 준 일본인 코디네이터는 ‘일본 병원에서 시찰까지 올 정도’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의료기기 역시 최신 기술을 활용한 장비 같았다. 외국인용 데스크에서 접수·진찰·진료비 지불까지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서 한국 병원에 대한 호감은 더욱 높아졌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외상(外傷)으로 큰 병원에 갔을 때였다. 몇 차례에 걸쳐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재진을 받을 때부터 “병원비를 선불로 내라”는 거였다. 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진찰을 받지도 않았는데 돈부터 내라니. 마음속에서 일종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진찰 후, X선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도 간호사는 “돈 먼저…”라고 말했다. 의료서비스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우선 돈부터 내야 한다는 것인가.

서둘러 돈을 지불하고 다시 검사실 앞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렸다. 이번에는 찍은 X선 사진을 CD에 넣어 주는데 물론 이것도 선불이었다. 그날은 원내를 오락가락하느라 정말 바빴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지불이 가능하다면 참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돈 내는 장소가 떨어져 있거나, 아예 층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돈을 낼 때마다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3시간에 걸쳐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녹초가 되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치료에 든 돈을 모두 합산해 마지막에 한 번에 내면 좋을 텐데, 매번 돈을 내기 위해 기다리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와서 받았던 병원에 대한 좋은 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의료도 분명 서비스업인 측면이 있을 텐데 왜 환자에게 부담을 주는 선불 시스템인지 친구에게 물었더니 “아마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 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의 큰 병원에서는 접수처에서 환자의 진찰 폴더를 준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뒤, 다른 과목의 치료가 필요하다면 진찰 폴더를 갖고 해당 과로 이동한다. 약간의 대기 시간은 있지만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스트레스는 없다. 모든 것이 끝나면 마지막에 최종 금액을 지불한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자동결제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물론 병원으로서는 환자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돌아가 버릴지 모른다는 위험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불 시스템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시스템을 보완하면 방법은 있다.

예를 들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에, 선불이라면 어떨까. 가격이 분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선불로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최종적으로 못 받을 가능성도 있다. 고객에게 맞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주는 미용실에서, 있는 동안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 기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지막에 돈을 내는 것이 나는 좋다.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평등하게 받을 수 있는 의료 행위에도 격차가 생긴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서도 돈 문제로 큰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 병원의 선불 시스템은 ‘돈 없는 사람은 고도의 의료 기술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점을 처음부터 병원이 구분하고 환자를 거절하는 것만 같아서, 왠지 서글프다.

※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3년째에 접어든다.

가와니시 히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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