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초중고 9시 등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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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에서 ‘9시 등교제’가 시행(1일)된 지 딱 1주일을 맞았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한 이 제도에 도내 2250개 학교 중 2001개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94%, 중학교 91.1%, 고등학교 72.7%의 높은 참여율입니다. 학생들에게 수면권과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이 정책에 대해 찬성도 있지만 반발도 거셉니다. 등교시간은 학교장 고유 권한인데 도교육청이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여론에서부터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 고3 수험생이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통학버스 운송 종사자들이 9시 등교 철회 시위를 하는 등 학교 담장을 넘어 사회적 논란까지 된 오전 9시 등교에 대한 두 전문가의 시각을 소개합니다. 》

▼학생-학부모-교육자 등과의 약속… 쉽게 바꿀 일 아냐▼

이대영 서초고 교장
이대영 서초고 교장
경기도교육청이 2학기를 앞두고 ‘건강한 성장·활기찬 학습을 위한 9시 등교 추진계획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과 교육감 서한문을 산하 교육지원청을 통해 도내 전체 초중고교로 발송했다. 서한문에는 아침에 부모와 식사를 함께하면서 가족 간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가정화목과 가정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도 곁들였다. 이재정 교육감이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기에 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 지역의 초중고교는 1일부터 ‘9시 등교’를 시작했다. 그런데 9시 등교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본격 시행과 함께 불만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행할 때는 그 정책이 유리하게 작용할 사람들과 그로 인해 불리함과 불편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오전 9시 등교에 대해서도 학생의 나이, 지역, 등교 거리, 부모님의 직업 등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바로 이 점이 9시 등교가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학교 등교시간은 학생들 입장에서 이른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등교시간은 학생, 학부모와 가족, 교육자, 운송수단, 학생을 관리 보호하는 사람 등과 합의된 하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시행 첫날부터 9시 등교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족들의 생활패턴이 깨져 버렸다”는 불만부터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1시간이나 혼자 집에 있다 등교를 해야 한다”는 맞벌이 엄마의 걱정까지, 목소리는 다양하다. 부모들의 출근시간은 그대로인 채 아이들의 등교시간만 늦춰진 탓이다. 일찍 출근하는 부모를 대신할 돌봄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면 이런 불편과 부작용을 차치할 만큼 9시 등교가 학생들에게 유리할까.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9시 등교는 청소년의 수면권과 건강권, 원거리 통학생을 위한 배려, 가족과의 아침식사를 통한 정서적 안정 등을 근거로 추진됐다. 일견 30분 늦게 등교하면 잠이 부족한 학생들이 30분 더 잘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등교가 늦어지니 그 시간에 TV를 본다” “더 늦게 잠들어 아침에 허둥대는 건 마찬가지”라는 부모들의 불만은 그래서 나온다. 청소년들의 수면부족 문제는 단순히 수면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늦게 잠드는 시간과 잠자는 중에도 스마트폰에 반응하는 등의 질적인 문제가 더 크다. 청소년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써야 할 점은 수면 습관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아침식사도 여전히 힘들다. 부모들은 예전처럼 일찍 출근하는데 단란한 아침식사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9시 등교의 본의(本意)가 폄훼돼서는 안 되지만 9시 등교가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여유를 줄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더 큰 문제는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9시 등교로 당장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학생들은 지금까지 8시 등교에 적응해 왔고, 여기에 맞춰 대학수학능력시험도 8시 20분에 시작한다. 경기도내 수험생들이 9시 등교에 적응하더라도 수능시험 당일에는 8시에 등교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촌극은 벌어졌다. 수능 시험 전 마지막 모의평가가 실시된 3일 경기도내 고3 학생들은 9시 등교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다시 8시에 등교해 시험을 치렀다. 경기도의 고3 학생들은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다. “‘9시 등교’ 때문에 1교시 시험을 망쳤어요”라는 원망도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특히나 교육정책은 수요자 입장에서 예측 가능해야 하며 안정적이어야 한다.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면서 이해와 설득의 과정을 거치고, 강요가 아닌 권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감의 소신과 철학에 따라 오랜 관습이 한순간에 바뀐다면 당초의 좋은 취지도 묻히고 부정적인 여론만 형성돼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될 수 있다. 교육정책을 바꿀 때는 충분한 시간과 적응 기간을 두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천천히 시행해야 한다. 9시 등교가 무엇이 그리 급한 일인가?
※ 필자는 교육과학기술부 대변인과 서울시 교육감 권한대행을 지냈다.

이대영 서초고 교장


▼양에서 질, 속도전서 여유있는 학습으로 가는 첫걸음▼


김성천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김성천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2008년 내가 근무했던 고교에서는 오전 7시 40분 등교, 8시 10분 수업, 오후 보충수업 2시간을 강행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힘겨워했다. 학교운영위원이었던 나는 등교시간과 수업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자는 문제제기를 했다. 토론을 하던 중에 화가 난 선배 교사가 내게 외쳤다. “우리 학교가 명문학교로 잘 발돋움하고 있는데 어디서 빨갱이 하나가 들어와서 학교를 망치고 있어!” 학생들이 아침밥이라도 먹고 올 수 있도록 등교시간을 늦추자는 제안은 ‘색깔론’과 ‘명문학교 망가뜨리기’라는 오해 속에 별 소득 없이 끝났다.

그로부터 6년 후, 경기도에서 88.9%의 학교들이 9시 등교를 실시한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9시 등교가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9시 등교가 입시를 망칠 것이라는 불안감을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고교에서는 강력한 생활지도, 많은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의 높은 참여율, 2학년 내 진도 마치기 및 3학년 반복 문제 풀이, 조기 등교라는 문법을 적용한다. 그러나 이런 양과 속도에 의한 학습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학습량과 속도 값을 대입하면 수능 점수가 팍팍 올라갈까?

학교 현장을 가보라. 적지 않은 학생들이 아침부터 졸고 있다. 국영수 시간에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또한, 수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도 학교의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은 여전히 수능에 초점을 맞춘다.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은 달나라 이야기이다.

9시 등교는 양에서 질로, 속도전에서 여유 있는 학습으로 학교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보다 정규 수업이 훨씬 중요하다. 내 아이가 속한 학교의 정규 수업의 질이 어떠한지, 수업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좋은 수업을 위해 선생님들은 모여서 학습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 교육과정 특성화와 다양화가 이루어졌는지를 학부모들은 따져봐야 한다.

좋은 입시 성과를 위해서는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줄여야 하고, 정규 수업과 교육과정의 질을 높여야 하며, 학생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도록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가 최상위권이라고는 하지만 학습 시간량을 투입한 학습효율화 지수를 보면 하위권으로 전락한다. 즉, 공부는 많이 하는데 학습의 효율은 매우 떨어진다. 교과서 요약, 선행 수업, 반복적인 문제풀이 수업은 한계가 분명하다. 토론과 참여, 독서, 프로젝트 활동, 진로활동이 결합한 수업과 교육과정을 모색해야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심지어 입시 결과도 살 수 있다.

9시 등교의 반대 주장을 보면 ①학교장의 권한 침해 ②지역과 여건 고려 ③고등학생들의 수능 생체 리듬의 훼손 ④맞벌이 부부의 고충 등을 들어 반대한다. 9시 등교는 학교 공동체의 논의를 통해 얼마든지 풀 수 있다. 설문조사라든지 주체별 토론회 등을 거쳐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다만 입시 경쟁 구조하에 있는 고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교가 조기 등교 하는데 특정 학교만 9시 등교를 결정할 수 없다. 결국 정책에 의해 학교장들이 등교시간을 늦출 수 있는 명분과 계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고교에서 9시 등교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일찍 학교에 와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과 만족도 높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맞벌이 부부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 수능을 대비한 생체 리듬도 수능을 앞두고 탄력적으로 학사를 운영하면 된다.

어느 공연장에서 앞좌석의 관객이 무대 장면을 잘 보기 위해 일어나면 결국 모두가 일어나야 한다. 누가 용기를 내어 일어선 관객들을 다시 앉게 만들 것인가? 경기도에는 9시 등교를 결정한 고교가 상당수 존재한다. 만약 경기도교육청을 넘어 타 시도교육청에서도 등교 시간 늦추기를 지금부터 준비해서 내년에 실시한다면 초중학교뿐만 아니라 고교에서도 9시 등교의 전면 실시가 불가능하지 않다. ‘아침이 있는 삶’이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열리기를 소망한다.
※ 필자는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김성천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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