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PK戰이 뭐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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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브라질 월드컵이 막바지를 향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1무 2패, 조별 최하위 성적으로 탈락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풀죽은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4년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월드컵이나 축구 시즌이 되면 자주 듣는 말 중에 ‘PK전(戰)’이라는 게 있다. ‘피케이전(PK戰)=승부차기’로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에 표제어로도 올라 있다. ‘승부차기’는 알겠는데 ‘피케이전(PK戰)’은 뭔가 요상하다. 영문 약자에다 한자를 더한, 속된 말로 ‘잡탕말’이다.

피케이(PK)는 페널티킥(penalty kick)의 약자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수비수가 직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을 했을 때 공격 측이 얻는 킥이다. 경기 중에만 준다. 골대로부터 11m 떨어진 곳에 공을 놓고 찬다.

승부차기는 연장전까지 치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때 두 팀에서 일단 5명씩 나와 양 팀이 번갈아 가며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 공을 차는 것이다. 페널티킥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16강전에서 브라질과 칠레의 승부차기 결과를 ‘브라질-칠레 1:1 PK 3:2’라고 전한 포털사이트도 있다. 당연히 ‘승부차기 3:2’라고 적어야 옳다.

어린아이도 구분하는 걸 국어원 웹사이트만 동의어라고 우기는 까닭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한때 일각에서 PK전이라는 말을 쓴 적은 있다. 그러나 요즘엔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나 해설자도 전혀 쓰지 않는다. ‘피케이전(PK戰)’은 빨리 표제어에서 내려야 한다.

승전보(勝戰譜)와 승전고(勝戰鼓)도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한자를 보면 쓰임새가 명확하다. 승전보는 싸움에 이긴 경과를 적은 기록이고, 승전고는 싸움에 이겼을 때 울리는 북이다. 따라서 ‘코리안 남매가 필드에서 동반 승전보를 울렸다’고 쓰면 잘못이다. 승전보는 ‘전하다’, ‘알리다’, ‘올리다’와 만나야 하고, 울리고 싶으면 ‘승전고’를 울려야 한다.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을 드러냈다’처럼 언중이 많이 쓰는 ‘승부욕’도 논쟁 중이다. 승부욕은 ‘이기거나 지려는 욕심’이라는 이상한 말이므로 ‘승리욕’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언중이 많이 쓰지만 바로잡아야 하고, 어떤 때는 틀려도 많이 쓰니까 인정해야 하는 게 말이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대단히 미묘하다. ‘승부욕’ ‘승리욕’ 둘 다 아직은 표제어에 올라 있지 않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브라질 월드컵#승부차기#피케이전#페널티킥#승부욕#승전보#승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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