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13> 유창혁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7일 15시 45분


코멘트
유창혁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은 “국가대표를 오래 운영한 덕에 중국 젊은 기사들의 바둑이 세다”며 “우리도 머지 않아 젊은 기사들을 정상권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유창혁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은 “국가대표를 오래 운영한 덕에 중국 젊은 기사들의 바둑이 세다”며 “우리도 머지 않아 젊은 기사들을 정상권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한국기원이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체제를 가동한 지 3주가 지난 26일. 한국기원 4층에 있는 '바둑 상비군 훈련장'을 찾았다. 바둑 상비군은 유창혁 감독과 최명훈 코치, 김성룡 전력분석관을 코치진으로 하고 국가대표 및 상비군 등 선수 33명으로 구성됐다.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한시적으로 국가대표 체제를 운영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상비군 체제로 만든 것은 처음이다. 훈련장에는 여느 스포츠 종목 훈련장 못지않게 열기가 가득했다. 규율도 엄격했다.

26일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훈련이 시작됐다. 일부는 공동연구를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자체 리그전을 시작했다. 유 감독과 최 코치도 연구모임 옆에 앉아 훈련 상황을 지켜보며 조언을 했다. 이날 오전 3층 회의실에서 유창혁 감독(48)과 인터뷰를 했다.

―바둑 국가대표 감독을 맡은 지 3주가 지났다. 생각대로 잘되고 있는지.

"선수들뿐 아니라 나나 코치들도 해보지 않던 생활이라 힘들다. 일단 따라주는 선수들이 고맙다. 오전 10시에 나오는 게 몸에 배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프로들은 자유롭게 살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비군 체제에서는 훈련에 예외를 두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박정환처럼 스스로 공부하는 기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내 판단이다."

유 감독은 "조혜연 9단이 하던 일을 거의 접고 '공부해야겠다'며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는 데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훈련 직전 만난 조혜연은 "상비군 중에는 나이가 가장 많은데 솔선수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한국 바둑이 중국 바둑에 밀리는 이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중국에 요즘 밀리고 있는 것은 바둑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거나 여러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솔직히 우리 기사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이어 중국 국가대표 체제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많이 공부한 듯했다.

"중국 국가대표는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까지 중국기원에서 공부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저녁을 먹고 인터넷에서 서너 시간 정도 다시 실전훈련을 쌓는다. 속기에 대처하기 위해 20초 바둑도 둔다. 중국에서는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가 돼야 비로소 '진짜 프로'라고 생각한다. 국가대표에게는 특전을 준다. 일반 프로는 불이익이 많다고 보면 된다."

유 감독은 "중국은 국가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오래돼 초반 포석이나 신수에 대해 공동연구를 해서 많은 정보를 축적해놓았다. 어린 중국 국가대표들이 한국 일류기사들을 상대로 이런 신수로 골탕 먹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사람은 대체로 대놓고 '우리가 낫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는데, 유빈 감독이 '포석은 우리가 세다'라고 말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에 상비군을 운영하면서 보니 젊은 기사들이 공부가 안돼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 중국 바둑은 어느 정도로 센가.

"중국에는 한국의 정상급과 실력차이가 거의 없는 기사가 30명 정도나 된다. 우리 일류 기사가 약간 유리하거나 5 대 5 정도로 보면 된다. 우리의 문제는 일류기사들 몇 명을 빼고 나면 중국기사들과 대적할 만한 기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젊은 기사들을 하루빨리 정상권으로 끌어올리는 게 나의 임무다. 물론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위권이 두터워져야 더 뛰어난 선수가 나올 수 있다. 현재 박정환도 좀더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바둑을 둬야 하는 데 약간 정체된 감이 있다. 선수들도 목표의식을 갖고 경쟁하면서 실력을 키워가야 한다."

감독으로서 그는 일류기사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고가 되려면 풀어야 한다. 후배를 끌어줘야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 고수이지만 어린 후배들로부터 신선한 감각을 배울 수도 있다.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혼자서는 어렵다. 나도 경쟁이 치열한 환경이었으면 좀더 성장했을 수도 있다."

유창혁 감독(왼쪽에서 두번째)이 연구모임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지현 4단, 유감독, 김채영 2단, 김혜민 6단, 오유진 초단, 신진서 2단.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
유창혁 감독(왼쪽에서 두번째)이 연구모임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지현 4단, 유감독, 김채영 2단, 김혜민 6단, 오유진 초단, 신진서 2단.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

―변상일 이동훈 신민준 신진서 등 영재그룹은 어떤지.

"중국은 1996년생 세계챔피언이 둘이나 나왔다. 둘 모두 9단으로 승단했다. 우리 영재들이 잘 두기는 하지만 중국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 아마 적당히 둬도 성적을 낼 수 있는 우리 환경 탓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도 요즘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신예들의 세계대회인 제1회 글로비스배에서 우승까지 했다.

"일본의 바둑계도 합심하고 있다. 어린 기사들의 정신자세가 달라졌다. 기술적인 면도 크게 발전했다. 젊은 기사들이 인터넷을 통해 대국을 많이 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친구들을 받쳐줘야 하는데 바둑 인구가 줄어드는 게 일본의 약점이다."

유 감독은 그러면서 일본과 비슷해져가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도 답답해했다. 그는 "바둑 교실이 이창호 신드롬이 있을 때 비해 3분의 1 정도로 줄었고 100명 이상이 배우는 바둑교실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방과 후 교실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며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에서 할일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중국의 어린이 바둑 열기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창혁은 이른바 공동연구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80년대 말 충암재단 이사장의 지원으로 관철동 한국기원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세 살 위 선배기사인 최규병(전 프로기사 회장), 양재호(한국기원 사무총장)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이창호도 자주 나왔다. 여기에 김승준 이상훈 최명훈 김성룡 등이 가세해 충암연구회를 만들었다. 나중에 '소소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유 감독이 최명훈을 코치로, 김성룡을 분석관으로 발탁한 것도 어렸을 때부터 그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기사와 관련해 "김성룡은 중국 정보에 밝고 적극적이며, 최명훈은 정통파로 일본 도제훈련 식을 선호하는 타입이어서 서로 보완을 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가 바둑을 배운 것은 7세 때. 당시 10급이던 아버지 유희범 씨에게서 배웠다. 이후 동네 기원을 다니며 실력을 키워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린이국수전에서 우승해 중앙무대로 진출했다. 선배 어린이 국수로는 조대현 최규병 양재호 등이 있다. 서울 태생인 그는 대전에서 10년을 살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9년 학초배에서 우승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국 대회에서 초등학생이 우승하기는 처음이었다. 이후 그는 1983년 국수전에서 우승하고 1984년 고교 2학년 때 세계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최고의 성적. 당시 일본의 아마추어 사천왕으로 유창혁에게 패한 히라다 히로노리(平田博¤) 7단은 "내 평생 이렇게 강한 아마추어는 처음 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 유창혁은 프로로 입단했다.

1986년 절대 강자 조훈현 9단과의 '탐험 대결'에서 정선으로 세 판을 내리 이겨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후 2년이 흐른 1988년, 당시 유창혁 3단은 조훈현에게서 대왕위를 빼앗는다. 첫 타이틀이다. 저단진이 타이틀을 딴 것은 1972년 서봉수 2단이 명인에 오른 이래 16년 만이다. 그가 지금까지 딴 타이틀은 모두 24개. 이 중에는 1993년 후지쓰배 우승을 비롯해 세계대회 6차례 우승과 왕위전 4연패도 들어있다. 후지쓰배에 이어 1996년 잉창치배, 2000년 삼성화재배, 2001년 춘란배, 2002년 LG배 우승 등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도 그의 자랑이다.

그의 기풍은 두터움을 배경으로 유장한 공격을 하는 괴물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과 닮은 것으로 평가된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맑은 용모 등이 당시 유행하던 고우영의 만화 '의적 일지매'의 주인공과 닮았다 해서 '일지매'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바둑평론가 이광구 씨가 일지매라는 별명을 처음 붙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문난 영화광이다. 그는 종종 인터뷰에서 "프로가 아니었으면 영화판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최근 본 영화로는 "심은경과 나문희가 주연으로 나온 '수상한 그녀'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운동으로는 "젊을 때는 등산과 축구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자전거를 겨우 타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기억나는 대국으로 패배한 대국을 꼽았다. 예상 밖이었다. 그는 "1996년 잉창치배에서 동갑 라이벌 요다 노리토모에게 승리한 뒤 보름인가 한 달 만에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는데 요다에게 패한 게 가장 아쉽다"며 "당시 잉창치배 축하를 받느라 관리를 못해 집중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로 2판을 역전패 당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는 승부사였다.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