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앵커는 눈물을 흘려선 안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다. 국군은 1952년 10월의 9일 동안 12차례 공방전 끝에 중공군 1만4000여 명(추산)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3400여 명의 국군도 죽거나 다쳤다.

이러한 “백마고지 전투에서도 낮잠 자는 사병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 속에서 진짜로 낮잠을 즐긴 병사가 있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누군가 ‘백마고지 전투’를 극한상황의 상징으로 삼아 만든 일종의 풍자이다. 세상에 어떤 비극이 닥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활용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요령꾼이나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와 같은 인간 군상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말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 속설은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른다. 나라의 불행, 남의 비극을 기회로 삼아 낮잠 정도가 아니라 백마고지를 누비며 죽음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에게 음료수나 간식을 파는 것에 빗댈 만한 사람조차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세월호 사고를 보라. 참담한 비극이 아닌가. 현장에서 동료 공무원들이 온갖 욕을 먹어가며 구조 작업을 벌이는데 줄줄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공무원들은 ‘낮잠 잤다는 사병’과 다를 바 없다. 별 연고도 없이 현장에 우르르 나타나 사진이나 찍는 국회의원들,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글과 사진을 마구 보내는 지방선거 예비 후보자들은 비극을 팔아 표를 모으려는 장사치이다. 사고를 내세운 홍보물을 돌리며 신도를 모으는 종교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언론도 가세하고 있다. 사고를 이용해 독자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려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는 신문 제목과 기사가 넘쳐난다. 텔레비전들은 시청자들에게 자극과 충격을 주는 내용이라면 사실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아무나 불러 인터뷰를 한다. 거기에다 방송사고나 다름없는 침묵으로 감정을 발산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욕까지 해대는 뉴스 진행자까지. 언론윤리의 금도를 넘는 기행들이 희대의 비극을 활용해 일어나고 있다. 이번 사고를 시청률 올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는 비뚤어진 욕심의 결과이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스티븐 워드 교수는 22만 명이 죽고 30여만 명이 다친 2010년 아이티 지진에 대한 ABC와 CNN의 감상적 보도를 언급하면서 기자들에게 “감정이 진정한 연민인가 아니면 자기광고인가”라고 물은 뒤 “방송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언론 환경 속에서 언론인들이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해 감정에 바탕을 둔 보도를 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암울한 지진 현장에서 기자들이 거저 냉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기사에 감정이 과잉되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의 유지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언론인들이 귀중히 여겨 아끼고 받들어야 할 규범이다. 그러나 엄청난 비극 앞에서 기자들에게 감정을 억누르라고만 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참혹한 현장 속에서 기자도 인간이기에 원초적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감정 표출이 불가피하다. 기자는 기계가 아니다. 기자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참담한 인간의 비극 앞에서 슬픔과 동정, 당황,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감추고 억누르는 것이 오히려 위선적일지 모른다. 지나치다 할 정도로 빠르게 소통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기자는 영혼이 없는, 괴물과 같은 ‘언론의 내시’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기자의 감정이 기사를 물들여서는 안 된다. 기자의 감정은 남용되고 조작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돋보이도록 감정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 기사가 아닌 자신의 행동에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 눈물을 흘리고 욕설을 퍼붓고 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기사로써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기자의 감정은 오로지 기사만을 위한 감정이어야 한다. 기자의 감정은 헌신적인 투지와 용기, 열정을 만드는 내면의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기자의 감정은 그러한 내면의 에너지를 담은 기사에서 드러나야 한다. 그것은 더 좋은 기사를 위한 동기와 자극이 되어야 한다. 더 자세하게 확인하고, 더 치열하게 비판하는 데 감정의 에너지가 쓰여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인재가 불러일으키는, 선박회사와 정부와 공무원 등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더 많은 문제를 캐내고 비판해 국민들이 소상하게 모든 것을 알도록 하는 데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뉴스 앵커의 원조국. 미국의 인터넷 집단 지성의 하나인 ‘와이즈 지크’는 “텔레비전 뉴스 앵커는 참혹하거나 비관적이고 개인적으로 민감한 뉴스를 감정 분출이나 개인의 견해를 피하면서 가장 객관적인 태도로 전달하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들은 뉴스를 보도하면서 개인적 감정과 의견을 숨기는 데 전문가”라고 적었다. 이 설명은 방송 중 침묵하고 눈물 흘리며 욕설을 하는 뉴스 진행자는 감히 ‘뉴스 앵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감정과 의견을 마음껏 분출하는 데 전문가인 앵커가 더 ‘개념’이 있다고들 한다. 언론의 본질이 극심하게 왜곡되고 있다. 세월호 비극을 팔아 시청률 올리려는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언론이 타락하고 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세월호#앵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