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블룸버그, 서울시장, 대권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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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이지만 뉴욕은 세계의 수도다. ‘도시는 싫어. 뉴욕은 좋아’라는 마돈나 노래처럼 뉴욕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도시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 뉴욕의 시장을 12년 동안 지내고 최근 퇴임했다. 블룸버그통신 설립자이자 세계 13위의 부자(포브스 추정)인 블룸버그는 9·11테러로 피폐해진 뉴욕을 다시 활기 있고 깨끗하게 재건했다.

억만장자라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상식인데 블룸버그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는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정치라는 신천지에 뛰어들었고 기존에 통용되던 게임의 규칙을 바꾸었다. 그는 뉴욕시장으로 일하며 개인 돈 7000억 원을 쓰고 연봉은 1달러만 받았다. ‘연봉 1달러’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재임 중 월급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블룸버그는 유능한 최고경영자(CEO)가 뛰어난 시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가 퇴임하던 날 뉴욕타임스는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다시 한번 번성하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연간 5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범죄율은 떨어졌으며 대중교통은 정비되었고 부패는 척결됐다. 만성적자이던 시 예산은 흑자로 돌아섰다.

우리가 블룸버그에게서 눈여겨볼 대목은 연봉 1달러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그가 보여준 비정파성과 초당적 행보다. 월가 출신이 대부분 그렇듯 그도 민주당원이었다. 그러나 난립한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후발주자로서 한계를 느끼고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공화당으로 재선에 성공한 뒤 3연임을 막는 시 공직법을 개정해 3선에 출마했지만 자신의 이념과 맞지 않는 공화당을 탈당했다. 그가 시행한 부동산세 인상, 흡연 및 비만예방 캠페인, 이민정책, 총기규제는 민주당 색깔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뉴욕시민이었지 당적이 아니었다.

서울시장이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인식된 것은 민선 1기(1995년)부터지만 대통령 당선 첫 테이프는 이명박 시장이 끊었다. 청계천 사업의 후광은 대단했지만 모든 사업을 치적과 연결하는 데서 오는 무리수와 부작용도 많았다. 취임일인 7월 1일 평일에 시행된 대중교통체계 개편이 가져온 혼란과 불편에 대해 이 시장은 3번이나 사과했다. 곳곳에 뉴타운 깃발을 꽂아 표심을 얻었으나 무리한 뉴타운 지정의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명박 성공신화를 목격한 오세훈 시장도 대권욕(大權慾) 때문에 실패했다. 오 시장은 재선에 임하며 “시장으로 임기를 마치겠다”고 했으나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은 다른 법이다. 정치적 이슈이던 무상급식을 신임과 연계해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가 주저앉았다.

안타깝게도 지금 6·4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잠재적 대권주자들이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당선되면 2017년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했지만 믿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미국에 있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이유가 서울시장으로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함일까. 아닐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오로지 시민만 생각하겠다”고 했지만,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주장한 ‘대통령 불출마 각서’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시장이나 주지사가 대선 후보로 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성공한 시장이나 지사가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하고 대권병 환자가 대권의 전초전으로 지방권력에 도전하는 일은 다르다. 대권병 환자가 시장이 되면 대선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판단이 흐려지고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블룸버그가 성공한 시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공화당의 숱한 대선 러브콜을 거절했기 때문임을 후보자들은 새겨두기 바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뉴욕#블룸버그#연봉#서울시장#6·4 서울시장 선거#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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