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괜찮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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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연애 시절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장갑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추운데도 장갑을 끼고 다니지 않았다. 왜 장갑을 끼지 않느냐고 묻자 잃어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다는 것이다.

“괜찮아.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는 또 오니까.”

‘괜찮아’라는 나의 말이 우리 결혼의 일등공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는 또 온다”는 내 말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웬만하면 괜찮다고 말하는 나의 여유가 성질 급한 남편에게는 편안한 느낌을 준 모양이다.

그러나 결혼해서 보니 남편의 물건 잃어버리기는 ‘괜찮은’ 수준을 벗어난다. 크리스마스가 한겨울에 두세 번은 있어야 그의 손이 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산은 우리 집에서 가장 낡은 것을 들려 보내는 게 유리하다. 때로 남편 역시 나의 여유로 인해 골탕을 먹는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속담처럼 가정 대소사를 처리하는 쪽은 성질 급한 남편이다. 내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탓이다. 그는 말로 하느니 차라리 행동으로 옮기는 게 편한 행동파이고 나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꿍꿍이로 늘 느긋하다.

크리스마스에 남편에게 장갑 같은 소품을 선물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어제는 요긴하게 걸치고 다니던 목도리가 없어졌다며 며칠째 여기저기 뒤지는 모습이 답답해 툭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그러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 사줄까?”

순간, 서로 눈길이 마주치면서 남편의 숱한 전과가 스쳐갔다. 동시에 남편이 강하게 손을 내저었다.

“됐어. 그냥 다른 거 하고 다닐게.”

나도 이번에는 “괜찮다”는 말이 얼른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은 최근에도 외출했다가 다른 분 사무실에 외투를 벗어 놓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잘 빠뜨리는 대신 민첩한 행동력에 덕을 보고 사는 것을 이내 떠올리고 곧 여유를 되찾아 덧붙였다.

“괜찮아. 크리스마스는 내년에도 또 오잖아.”

한 해가 저무는 이때에 “괜찮아”라는 말, 참 괜찮은 것 같다. 올해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했어도, 상대의 결점은 물론 나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따뜻하게 토닥거리는 말, “괜찮아.” 입속에 되뇌면 추울 때 마시는 따끈한 차 한잔처럼 가슴이 훈훈해진다.

윤세영 수필가
#크리스마스#장갑#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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