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 해외사극은 역사 고증 철저한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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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위성 TV 화면 촬영
중국 후난위성 TV 화면 촬영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뤘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

MBC 드라마 ‘기황후’ 도입부에 삽입된 문구다. 제작진은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이 일자 이 문구를 넣고 주인공 중 한 명인 충혜왕을 가상의 인물 왕유로 변경했다. 사극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은 이젠 그저 한 번쯤 거치는 식상한 얘깃거리가 돼버린 느낌이다.

외국도 그럴까. 해외에서도 역사물을 자주 방영하지만 철저한 역사적 고증은 제작의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 이런 고증 작업을 극의 설득력을 높이는 핵심으로 여긴다. 최근 히트한 영국 드라마 ‘다운턴 애비’는 타이타닉호 침몰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역사 속 사건·사고와 시대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실제 역사를 정확히 그려냄으로써 드라마 속 가상의 삶과 실제 역사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쾌감을 준다.

물론 헨리 8세나 엘리자베스 1세처럼 실존 인물이 여러 차례 드라마화되는 경우 야사가 정사처럼 그려지거나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증을 통해 설득력을 높인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 한국처럼 고려 말 궁중에 뜬금없이 조선시대의 ‘내훈’이 나오거나 이미 멸망한 돌궐이 부활해 원나라와 전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억지로 선악 대립 구도를 만드느라 역사를 훼손하는 일도 없다.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시즌2 방영을 앞둔 ‘보보경심’(사진)은 강희제 시기의 황위 계승 다툼을 다루고 있다. 선악 구도로 다루기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보보경심’은 타임슬립 드라마임에도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역사 왜곡 논란이 일 때마다 한국의 제작진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발뺌한다. 하지만 그럴 바엔 한 편의 판타지 드라마를 만들면 될 일이다. 역사 속에서 마음에 드는 소재만 쏙 뽑아내 그에 맞춰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내는 역사 드라마에 과연 시청자들이 계속 호응해줄까. 게으름은 둘째 치고 비겁하기까지 한 이런 사극에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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