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대북 제재 속에 사정이 나아진 북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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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올해 3월 유엔의 대북 제재가 더욱 촘촘해졌다. 중국마저 적극적으로 동참하자 국제사회의 북한 압박은 마침내 본때를 발휘하는 듯했다. 북한이 편법 활용해온 중국은행 내의 북한 계좌들은 동결되거나 폐쇄됐다. 통관검사는 까다로워졌고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던 인력 송출도 제한을 받았다. 6월 미중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은 한목소리로 북한 비핵화와 핵보유국 불용이라는 원칙을 다시 천명했다. 유엔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와 한미 양자 제재에 북한 김정은 정권이 꽤 아파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었다.

우여곡절이 많은 8개월이 흘렀다. 현재 북한, 특히 평양은 과거보다 더 밝고 개방된 모습으로 비친다. AP통신의 진 리 초대 평양지국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의 변화가 깜짝 놀랄 만하다”고 전했다. 김정은 정권 수립 이후 최근까지 현장에서 1년 10개월을 관찰한 기자의 증언이다. 평양에서 3세대(3G) 모바일 인터넷이 되고 수입품이 주요 도시마다 넘쳐난다고 한다. 비슷한 증언은 계속 쏟아진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많은 인사들이 이전보다 밤거리가 밝아졌다고 말했다. 고급 쇼핑타운이 손님들로 북적인다는 목격담도 리 국장의 관찰과 통한다. 올해는 고질적인 식량 부족 소리도 쑥 들어갔다. 중국 측 공식 통계에 따르면 올 1∼9월 북한에 수출한 식량은 총 24만1000t으로 전년도 43만7000t에 비해 45%가량 줄었다. 그래도 북한의 쌀 가격은 안정돼 있다고 한다.

강화된 제재 속에 사정이 오히려 나아진 듯한 북한의 현재 모습을 두고 제재 무용론이 나온다. 올해 국감에서 야당은 제재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도 “가난하고 폐쇄된 북한에 제재를 더 한들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제재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 태세다.

여기에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경제에 신경을 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관측이 곁들여진다. 지난해부터 북한은 꾸준히 경제 개선 조치를 내놨다. 최근에도 경제개발 조직을 개편하고 14곳을 국가급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외자유치 목표도 약 15억9000만 달러(약 1조6900억 원)로 알려졌다. 외국과의 합작 움직임도 감지된다.

하지만 이런 제재 무용론은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반대로 읽어낼 만한 정황 또한 풍부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 이후 거의 2년 동안 공장이나 도로 댐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었다. 스키장 물놀이장 유원지 등 체육 및 위락시설만 줄기차게 건설 중이다. 평양의 밤거리가 조금 환해진 이유는 다른 지역으로 가던 전기를 끌어왔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점사업이던 희천발전소가 가동된 덕분일 수도 있다. 특권층의 도시인 평양만 호의호식할 뿐 나머지 지역이 더욱 어려워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구는 국가의 모든 총력을 쏟아도 성공할지 불투명한 위험한 도박이다. 이미 오랫동안 공들인 금강산, 나선, 황금평·위화도 특구는 거의 진전이 없다. 여기에 몇 개를 더 추가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 중국은 30여 년 전 선전(深(수,천)) 특구를 만들 때 일반인이 함부로 못 드나들도록 철조망을 둘렀다. 그럼 북한도 국토의 14곳에 철조망을 두르겠다는 소리인가? 얼마 전까지 북한의 외자유치 전담 기구였던 대풍국제투자그룹은 100억 달러(약 10조6450억 원) 투자유치 목표를 세웠지만 제대로 된 1건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해체됐다.

북한의 현 모습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북한의 곳간 사정을 고려하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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