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이석기 쇼크’와 언론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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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위협한 중대사건, 의혹 검증작업 이제부터가 시작”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3일 본사 회의실에서 ‘이석기 쇼크와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임규진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3일 본사 회의실에서 ‘이석기 쇼크와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임규진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대한민국 국회에 진출한 세력이 체제전복을 노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보수와 진보진영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법부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도의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3일 ‘이석기 쇼크와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참석자>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위원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임규진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이른바 ‘이석기 쇼크’는 현역의원 최초의 내란음모사건에다 종북 세력의 제도권 진입 등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어떤 시각으로 보고 계신지, 그리고 보도된 내용 중 아쉬운 점도 함께 말씀해 주십시오.

이진강 위원장=올바른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이 사건의 성격과 내용을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사안 자체가 비밀스럽고 핵심정보를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사를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곧 재판이 진행될 텐데, 수사가 진행 중일 때는 피의사실공표죄 등을 유념해야 되므로, 공판이 열리면 이전과는 다른 내용이 쏟아져 나올 수 있습니다.

고희경 위원=한반도가 가지고 있는 핵심 문제가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도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 등의 남북문제는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형과도 같은 문제라고 봅니다.

김성태 위원
=독자 입장에서 차갑게 바라보면서 진실을 파헤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입니다. 검색전문 사이트에서 ‘이석기’를 검색해보니 1300만 건이 뜨더군요.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어진 것입니다. 단순히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즉 내란 음모가 진짜일까 하는 충분한 증거가 제시됐는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하나하나 짚어보고 팩트 위주로 검증해야 합니다.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신동아’도 특집기사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 즉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 비이성적 사고를 가진 종북세력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석기 그룹은 1970년대 서울의 도시 빈민을 수용하기 위한 경기도 광주대단지 건설 갈등을 지켜보며 성장했고 훗날 노동, 빈민운동을 하던 ‘집단적 기억’과 동지애를 바탕으로 토대를 다졌다고 합니다. 그 무렵 형성된 피해의식과 뒤틀린 자의식이 결속력을 키웠겠지만 급변하는 세월에도 어떻게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들의 과거 행적에 컴퓨터단층촬영과 같은 연대기적 분석이 필요했던 대목입니다.

이 위원장=국가 안위에 관한 문제인 데다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공안당국이 모든 팩트를 쥐고 있습니다. 공판과정에서 공소장과 녹취록 등 여러 증거를 분석해 앞으로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별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한 사안이어서 발표 내용을 쓰다 보니 보도내용들이 대동소이한 면이 있습니다. 공판 과정에서 혐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기사 경쟁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보도의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 언론이 녹취록 전문을 게재했습니다. 녹취록 전문 공개가 현행법에 저촉되는 건 아닌지, 이 사건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건지 궁금합니다.

김 위원=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는 사안에서 취재원 보호는 일정부분 제한돼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떻게 녹취록을 입수했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한 취재원을 밝혔다면 진실성면에서 더욱 돋보였을 겁니다.

고 위원
=일반 독자로서 녹취록 자체는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입장에서 이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녹취록을 왜 공개했을까, 제보자는 누굴까 그런 것이 오히려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김 위원
=따옴표가 들어가면 독자의 신뢰가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녹취록 공개는 그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인터넷에서는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당시엔 국정원의 국면전환용 카드 아니냐는 의문 제기와 여론재판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누리꾼 반응은 대부분 혐의 내용에 대한 충격과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당국이 수사진행 과정을 공개적으로 브리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할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혼란을 줄이는 길이라는 취지인데요, 언론에서 피의사실공표와 국민의 알 권리 충돌에 관한 전문가 토론의 장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위원장
=단순히 녹취록만 공개할 것이 아니라 녹취록에 나오는 관련자들을 만나 사실인지를 밝혀 알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 위원
=이석기 쇼크는 내사가 오래 진행된 사건인데, 왜 그 시점에서 뉴스가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과거 미국 언론은 고공정찰기인 U-2기를 파키스탄 기지로부터 소련 상공에 띄워 미사일 활동과 기지를 촬영해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안보를 위해 1960년 소련이 정찰기를 격추할 때까지 보도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임규진 스탠더드에디터
=현실적으로 진짜 위협이 되느냐도 중요합니다. 이석기 세력은 전면전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북한과 연계 고리가 없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조직이라 하더라도 체제 전복 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독일처럼 인권을 강조하는 선진국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선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
=이 사건을 ‘실현 불가능한 불능범’이라거나 ‘시대착오적인 집단이 농담으로 한 말’이라는 술책을 펴려는 움직임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라면 자유토론의 장을 만들어 줘야 하고, 이념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말리면 안 됩니다.

고 위원
=국정원에서 나오는 정보만 갖고 기사를 쓰면 왜 이 시점에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는 의심을 갖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골수 운동권 출신 인사를 인터뷰한 타지처럼 취재원을 다양하게 해서 다각도로 다뤘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김 위원
=일전에 미국 미네소타의 한 극장에서 장난으로 ‘불이야’를 외친 일이 발생했습니다.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단순 사고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고를 야기한 사람이 처벌을 받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 위협이 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약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임 스탠더드에디터
=우리 사회가 청년실업과 양극화 같은 문제로 인해 이석기 키즈를 키운 측면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분명 사회가 성숙해 가는 단계로 볼 수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이번 쇼크를 보는 시각은 확실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해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며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 위원
=독자들은 새로운 뉴스, 자극적인 뉴스를 찾습니다. 곧 공판이 열려 관련 내용이 쏟아지면 국민들이 식상해할 수 있으니 미리 독자들의 관심을 살펴 준비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이 위원장
=속보경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일전에 보도한 ‘이민위천(以民爲天)’ 기사는 이석기가 종북주의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한국의 여러 정치인들도 썼던 글귀여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 통합진보당 해산과 같은 사안으로까지 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아일보가 여러 의미와 파장 등에 잘 대비하길 바랍니다.

정리=김동원·우경임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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