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의 경제 프리즘]박원순 vs 맥쿼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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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논설위원
허승호 논설위원
서울지하철 9호선의 요금 인상을 놓고 서울시와 티격태격해온 맥쿼리-현대로템 컨소시엄이 9호선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서울시가 민자로 건설한 9호선의 투자 및 운영사인 메트로9㈜의 주주교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투자자 후보는 한화 교보 흥국 등 생명보험사들. 기존의 모든 주주는 지분 전량을 넘긴다. 보험사들은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 할 뿐이며 운임 결정 등 경영권은 서울시가 행사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다. 이렇게 되면 9호선 요금을 둘러싼 서울시와 메트로9 간의 갈등은 사라진다.

매각 협상의 구도. 서울시가 주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9호선 건설을 위한 30년짜리 민자 유치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운임은 운영사인 메트로9가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율결정한다”고 계약했으나 2009년 개통이 임박해지자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고 “1∼8호선과 동일한 요금을 적용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메트로9는 적자가 쌓였고 대주주들은 “계약을 지켜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서울시는 이들이 영 껄끄러웠다. 그러던 차에 ‘요즘 생보사들이 돈은 넘치는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들로 투자자를 교체하면서 계약 내용까지 완전히 바꾸려는 것이다.

메트로9의 기존 주주들로서도 크게 미련이 없다. 4년간 감독관청과의 갈등으로 지쳐버린 상황에서 일종의 탈출구를 찾은 셈이기 때문. 특히 메트로9의 제1 대주주 현대로템은 지하철 1∼9호선의 차량 공급사로 서울시와 계속 싸울 처지가 못 된다.

쟁점. 핵심은 지분매각 가격이다. 기존 주주들은 계약에 담긴 ‘30년간의 연 8.9% 예상수익률’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제값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가 새 투자자로 들어오든 지하철 요금 원가가 떨어질 요인이 없다. 따라서 서울시는 ‘대금을 깎자’는 구매자들의 편이다. 또 매각대금이 떨어져야 앞으로 서울시가 짊어질 9호선 운영적자에 대한 보전 의무도 가벼워진다. 현재 서울시와 기존 주주 간에 치열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가치 환산액에서 일정 부분 깎이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수혜자와 피해자. 서울지하철은 원가보다 운임이 싸다. 1∼8호선은 그 차액을 전체 시민(시 재정)이 부담하고 있다. 9호선의 경우 계약상으로는 민자사업의 특성에 따라 이용자들이 더 높은 요금을 내도록 돼 있다. 만약 메트로9의 지배구조가 바뀌면 9호선도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는 방식이 된다. 요금이 안 오르므로 9호선 이용자가 직접적인 혜택을 본다.

가장 큰 수혜자는 주주교체 작업을 주도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탐욕스러운 민간자본의 공공요금 인상 요구’를 이겨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요금 인상 소지까지 말끔히 해소한 ‘서민 시장’으로 자신을 브랜드화할 수 있다. 엄청난 정치적 성취다.

반면 기존 주주들은 서울시와 갈등을 피하는 대신 매각대금이 깎인 만큼의 투자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맥쿼리한국인프라펀드 같은 대주주가 특히 난감해진다. 맥쿼리는 펀드 자체가 코스피 및 런던거래소의 상장종목이다. 수익률 하락 자체도 큰 타격이지만 스스로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결정을 할 경우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소홀’을 이유로 투자자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한편 9호선 운영자가 민간에서 관청으로 바뀌면 공공 운영에 따른 일정한 비효율이 예상된다. 이 역시 서울시민의 부담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영향. 공공요금이 안정되는 대신에 입게 될 가장 큰 타격은 서울시의 신뢰 추락이다. 서울시가 계약을 안 지켜 투자자에게 손해 끼치는 일을 한 것인 만큼 정책의 신뢰성, 투명성, 예측가능성 훼손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국내외 연기금, 공제회, 펀드 등에 사회간접자본(SOC) 민자 투자를 권유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자본시장에 새로이 노출된 ‘서울시 리스크’는 서울시만의 부담이 아니다. ‘코리아 리스크’로도 분명 작용한다. 그게 걱정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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