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중국, 북한 못 다루면 대국 못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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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손바닥만 한 북한도 다루지 못하면서 무슨 대국타령이냐?”

올해 초 만난 중국의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잦은 불장난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중국을 개탄하는 목소리였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은 사전적 의미의 대국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맞게 정치 군사 경제적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책임감 있는 발전하는 신형대국’을 꿈꾸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이래 주목받는 외교용어인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는 이런 중국의 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마찰을 빚지 않고 발전할 것이며 국제적 사안에 더욱 책임감 있는 ‘새로운 형식(신형)의 대국’을 목표로 한다. 중국이 기존 대국인 미국과 대립 갈등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 경쟁을 통해 공동 이익을 확대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국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이다. 신흥대국이 기존 대국을 이기는 ‘대국의 굴기(굴起·떨쳐 일어남)’ 패턴에서 벗어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국관계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시 주석 등 중국 지도자는 미국 인사를 만나거나 미국을 언급할 때 이 표현을 쓸 뿐 다른 대국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국에도 격(格)이 있는 셈이다.

중국이 미국에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동안 중국의 발전은 미국의 협조와 묵인 없이는 불가능했다. 신형대국관계에서 방점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발언권과 그에 대한 일종의 ‘대가’로 중국이 국제 현안에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데 있다.

시 국가주석 취임 이후 미중 양국 정상이 7, 8일 캘리포니아의 휴양 도시에서 처음 만난다. 어떤 신형대국관계로 세계무대에 첫선을 보일지 관심이다.

양국은 대화와 협력을 서로 강조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양국은 사이버 안보문제 등으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중-일 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등을 놓고도 양국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뾰족한 해법은 없다. 중국의 한 고위 외교관은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에 “중-미 양국 관계는 ‘신뢰의 적자’ 상황”이라며 “양국 간 신뢰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대목은 양국 간 대화와 협력이 북한 핵 문제에서 모색되고 있는 점이다. 신형대국관계의 시금석이 한반도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은 최근 방중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게 비핵화를 강도 높게 주문했다. 관영 신화(新華)통신의 관련 보도에는 시 주석의 언급을 표현한 여섯 줄의 문장 속에 비핵화란 표현이 세 차례나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주요한 의제로 ‘조선반도(한반도) 국면’을 언급했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는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아주는 완충지대’라는 국가이익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세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만물유전(萬物流轉)이 물리세계의 원리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한 미국 언론에서 “나의 직감은 중국인들이 이 문제(한반도)를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만도 시 주석 등 중국 전현직 최고위 인사를 수시로 만나온 서방 최고의 중국통인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북한에 생존 공간을 제공해온 미중의 갈등과 대결이라는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중국#북한#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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