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84>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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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편 손으로 사랑을
―빈센트 밀레이(1892∼1950)

활짝 편 손에 담긴 사랑, 그것밖에 없습니다.

보석 장식도 없고, 숨기지도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사랑.

누군가 모자 가득 앵초 꽃을 담아 당신에게

불쑥 내밀듯이,

아니면 치마 가득 사과를 담아 주듯이

나는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드립니다.

아이처럼 외치면서

“내가 무얼 갖고 있나 좀 보세요!

이게 다 당신 거예요!”

거침없는 사랑이어라! 두 뺨은 사과처럼 탱탱하고 머리칼은 희고 붉은 앵초 꽃이 다발로 나부끼는 듯, 그리고 눈동자는 사랑의 기쁨으로 초롱거리리. 제 젊음과 아름다움에 자신만만할 때에야 이렇듯 한 점 그늘 없이 사랑하리. 하, 풋풋하고 싱그럽다!

앵초는 봄의 꽃, 사과는 가을 열매. 온 계절이 사랑의 계절인 청춘은 아름다워라! “이게 다예요! 사랑이 다예요!” 구가하시라. 분하게도, 나이 들어서 거침없이 사랑을 드러내면 주책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노라. 에로스로서의 사랑에서 소외자가 돼 버리는 것이다. 젊디젊은 이들 가운데도 사랑의 서민이 있다. 빈민도 있고. 그렇다고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나도 사랑의 서민이었다. 그때는 기가 죽기도 했지만, 살아보니 그렇더라. 인생 전체로 놓고 보면 사랑이 그렇게나 죽고 못 살 만큼 대단한 게 아니라는. 뭐, 젊은 당신에게 위로가 될 말이 아니겠군요…. 그래요! 사랑의 갈증도 젊을 때나 있는 거예요. 그 고통을 즐기세요. 당신의 젊은 피에 흐르는 뜨겁고 순수한 사랑의 열망은 기어이 대상을 찾는답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음악이라든가 시라든가, 뭣이 됐든 그 대상을 탐스럽게 꽃피운답니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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