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SM타운-YG패밀리-JYP네이션 ‘엔터테인먼트 국가’ 개국을 선포하노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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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현장에 자체 국기-국가-여권까지 등장… 세계를 무대로 한 한류 삼국지

1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특설무대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서울’ 공연에서 흰색 의상을 맞춰 입고 나온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
이 ‘SM타운’의 주제곡인 ‘디어 마이 패밀리’를 합창하고 있다. 이날 ‘SM타운’은 “국경
을 뛰어넘어 음악과 퍼포먼스로 하나 되는 음악국가”를 선포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1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특설무대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서울’ 공연에서 흰색 의상을 맞춰 입고 나온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 이 ‘SM타운’의 주제곡인 ‘디어 마이 패밀리’를 합창하고 있다. 이날 ‘SM타운’은 “국경 을 뛰어넘어 음악과 퍼포먼스로 하나 되는 음악국가”를 선포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국내 대중음악 산업은 언젠가부터 ‘국가(國家)’를 닮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아이돌 음악이 전성기를 맞으며 굳어지게 된 경향이다. 강한 카리스마의 가요기획사 대표를 중심으로 가수들을 발굴, 육성하고 데뷔 후 인기를 얻는 방식이 그렇다. 대형 음반사와 그 산하 레이블, 독립 음반사 등이 기획, 제작, 홍보, 유통 등을 분업하는 영미권 대중음악계의 모델과 분명히 다르다. 일본의 대형 기획사들은 일찍이 1990년대부터 한국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큰 성공을 거둬왔다.

올 것은 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로 다국적 팬까지 결집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은 이제 국경을 넘고, 지우고, 다시 긋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국가의 탄생’이다. 그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건국사’를 재구성했다.

#제1장-일본 안의 일본 아닌 나라
2012년 8월 26일 오후 3시 반, 일본 도쿄(東京) 도 조후 시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한낮의 더위가 막 가시기 시작한 스타디움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5만 관객이 여름의 마지막 열기를 꾹꾹 짜 내뱉듯 한꺼번에 함성을 쏟아냈다.

이곳은 평소 축구 경기장으로 쓰였지만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이재민들의 임시 거처 역할도 해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이곳은 이날 실존 국가 일본을 괴롭힌 지진과 해일, 방사능에 영향 받지 않는 ‘형이상학적 국가’의 신민(臣民)들로 가득 찼다. 대형 특설무대 가운데 자리한 것은 해를 상징화한 빨간 원이 아니었다. 다양한 색깔의 영어 알파벳 소문자 ‘a’ 51개가 커다란 ‘a’의 형태를 만든 로고. 그것이 상징한 국가는 일본이 아닌 ‘에이네이션(A-Nation)’이다. 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 에이벡스가 2002년 세운 가상 국가. 1988년 설립된 에이벡스는 1990년대부터 일본 ‘아이돌 시장’을 장악했다. 하마사키 아유미, 고다 구미 등 소속 가수들의 단독 콘서트는 연속 매진됐다. 에이벡스는 이때부터 산발적으로 치르던 소속 가수 합동콘서트를 매년 8월에 집중하기로 하고 2002년 ‘에이네이션’이라는 콘서트 브랜드를 론칭했다.

#제2장-스크린 속에 생중계되는 나라
2012년 8월 26일 오후 3시 35분, 한국 서울 사당1동 메가박스 이수점 4관

상영관 내부 조명이 꺼졌다. 일본의 7인조 댄스 그룹 AAA(트리플 에이)가 스크린에 등장했다. 대학생 김영익 씨(23)가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스크린에 투사된 AAA 멤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스크린에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진행되는 에이네이션 콘서트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2만5000원의 입장료를 주고 극장에 들어온 그는 AAA의 개막 공연부터 하마사키 아유미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며 무대에서 불꽃이 올라올 때까지 5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날 공연에는 하마사키와 AAA, 애시드 블랙 체리, 에브리 리틀 싱, TRF 등 현지 스타들이 출연했다. PC통신 시절부터 하마사키의 팬이었다는 대학생 노재윤 씨(26)는 “사실 요즘엔 일본 음악보다 케이팝이 더 세련됐다. 하지만 정(情)과 의리로 10년째 아유미 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3장-국가의 탄생
2012년 8월 18일 오후 5시 반, 한국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서울올림픽이 열린 이곳에서 케이팝으로 하나 된 세계인들이 모여드는 장면을 보게 되네요.” 슈퍼주니어 멤버들의 현장 중계방송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미국!”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국가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국기가 그려진 피켓을 든 기수가 그 나라에서 온 팬들과 함께 입장해 주경기장 트랙을 돌았다. 올림픽 개막식과 똑같은 형식.

30여 개국 팬들의 입장이 끝났다. 스타디움 특설무대 주변에는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케이 등 가수 52명의 전신사진이 걸렸다. 소녀시대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커다란 SM기를 펼쳐들고 트랙을 돌았다. 이어 SM기 게양식. 하얀 옷을 차려 입은 가수 강타와 보아가 무대 한가운데로 나왔다. “여기 모인 우리는 언어와 민족은 다르지만 SM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하나 되는 뮤직 네이션(Music Nation), SM타운의 국가 탄생을 선포합니다!” 불꽃이 터지면서 대형 스크린에 잡히는 ‘SM기’, 그리고 불끈 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의 모습. 가수들의 SM타운 주제곡 ‘디어 마이 패밀리’ 합창. 국가의 탄생이었다.

#제4장-삼국(三國)의 형성
1999년 12월 1일∼2010년 12월 24일

18일 뮤직 네이션, 다시 말해 음악국가 개국을 선포한 SM타운은 당초 거대한 무언가를 표방하고 출범한 것은 아니었다. 출발은 소속 가수들이 모여 성탄절 기념 음반을 내보자는 것이었다. SM타운이라는 명칭은 이들이 1999년 12월 1일 발매한 ‘크리스마스 인 SM타운’ 음반 제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SM타운은 이후 소속 가수들의 합동앨범 발매와 콘서트 개최를 이어갔다. 일본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에서 케이팝의 위상이 급상승한 2008년 SM타운 콘서트는 중국과 태국 공연을 포함한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로 확장됐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이 SNS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면서 팬덤은 더 많은 나라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2011년 6월 10, 11일 열린 SM타운 프랑스 파리 콘서트는 케이팝 붐의 탈(脫)아시아화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결국 최근 ‘SM타운 국가’를 선포하기에 이른 SM엔터테인먼트는 이달 초 일본 도쿄돔 콘서트부터 공연장 앞에서 각국의 팬들을 대상으로 특별 제작한 ‘SM 여권’까지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권을 받은 팬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현지의 SM타운 콘서트에 참석하면 주최 측으로부터 ‘참석 인증 스탬프’를 여권에 받을 수 있다.

‘YG패밀리’는 1999년 7월 YG엔터테인먼트가 낸 ‘패밀레니엄(Famillenium)’ 음반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양현석 지누션 원타임 등 소속 가수들이 함께 한 노래 ‘우리는 Y.G 패밀리’로 ‘가족의 탄생’을 알렸다. 이들 역시 2003년 ‘YG패밀리 원 콘서트’를 론칭해 2006년 이를 세계 투어로 넓혔다. 지난해 ‘YG패밀리 콘서트’가 한일 양국에서 20만 명을 모으면서 ‘패밀리’는 ‘네이션’ 규모로 커졌다.

JYP는 가장 나중에 그 기틀을 세웠다. 기치는 ‘JYP네이션’. 2010년 12월 24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수장(首長) 박진영과 원더걸스, 투피엠, 미쓰에이, 주, 산이 등이 릴레이 공연을 펼치며 ‘세(勢)’를 과시하고 가수별 팬클럽 간의 교류를 도모했다. 지난해에는 이 브랜드로 일본에 진출해 ‘영토 확장’에 나섰다.

YG와 JYP는 아직 SM 같은 ‘선포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지만 해외 팬들의 소속감 증대와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제5장-삼국의 미래
2012년 8월 30일∼?

‘엔터테인먼트 국가의 탄생’은 세계에 퍼진 케이팝 팬들의 다양한 취향을 직조하고 묶어내 ‘애플 팬’처럼 열광적인 팬 층을 만들고 넓히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해외 팬들의 충성도와 강한 구매력은 수익으로도 연결된다.

18, 19일 일본 국립 요요기 경기장에서 열린 ‘JYP네이션 콘서트 인 저팬’은 3만5000명의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입장료 수익에 티셔츠와 수건, 가방 등 머천다이즈 상품의 판매까지 묶어 회당 수억 원을 벌어들인 효자 공연이었다. 최근 소속 가수들의 미진한 차트 성적과 음주운전, 수장 박진영이 일부 투자하고 주연한 영화의 흥행 참패 등 악재를 끌어안은 JYP에는 오아시스 같은 호재였다.

보라, 세계를 주유하며 새롭게 펼쳐진 ‘엔터테인먼트 삼국지’. 그 영토는 어디까지 뻗어갈 것인가.

[채널A 영상]‘강남 스타일’, 케이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엔터테인먼트 국가#대중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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