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일상이라는 이름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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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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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석주, 캔버스에 유채. 아트블루 제공.
일상, 이석주, 캔버스에 유채. 아트블루 제공.
겨울이 되면 특히나 2월 말이면 약간의 무기력증과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새해의 서장을 여는 기쁨도 사라지고 지루한 겨울을 견디며 새봄을 기다리기에도 어정쩡한 달이 2월인 것 같습니다. 1년 중에 채 30일도 되지 않은 짧은 한 달이 불안정하게 덤으로 얹힌 것 같거든요. 날은 여전히 춥고 게다가 뭐 신나고 재미있는 일도 없어 “사는 게 왜 이래, 되는 일도 없고”라며 투덜거리곤 합니다.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보내는 이 무렵은 딱 아프기 좋은 달입니다.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고 일상이 지루해지니 이즈음 저에게는 감기나 뭐 이런저런 잔병이 찾아옵니다. 죽을 만큼 아픈 건 싫지만 가끔씩 앓는 건 참 사람 마음을 겸손하게 해줍니다. 욕심을 내려놓게 만들고 무사히 지나는 일상이 참 고맙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앓음’은 차라리 사치인지도 모릅니다.

어제 저는 제가 좋아하는, 가까이 지내는 한 분의 갑작스러운 발병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던 그분이 병원에서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니 하루 종일 마음이 아프고 잔병으로 엄살을 부린 제 모습이 너무 가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금 고통 속에서 미래의 시간은 공포로, 과거의 시간은 회한으로 맞이할 그분의 심정이 상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는 게 한순간,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지루한 일상의 시간이 늘 지속될까 봐 가끔 진저리를 칩니다.

여기 이 그림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황량한 추운 2월의 벌판 같은 삶을 일상이라는 이름의 낡은 기차가 끝없이 나 있는 레일을 타고 시간 속을 달립니다. 일정 속도로 무조건 앞으로만 달리며, 지루하게 반복되는 동력의 리듬감으로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끄덕끄덕 졸기도 하겠지요. 일상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이란, 묵묵히 달리는 무쇠기차처럼 힘이 셉니다. 그 무한 반복될 것 같은 지루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가끔 낭만적 일탈을 꿈꿔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탈선하거나 폭발하는 기차에 타게 된 사람들은 어떨까요? 9·11테러나 일본의 대지진이나 전쟁이나 테러 등 지구촌 사람들이 재앙을 당하던 순간의 그 공포를 떠올려봅니다. 그들이 1초 전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얼마나 삶의 전차를 역주행하고 싶었을까요?

지난해 개봉한 영화 ‘라이프 인 어 데이’는 2010년 7월 24일 하루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는 197개국에서 올라온 4500시간에 달하는 8만여 개의 동영상을 편집한 작품입니다. 피부색과 사는 곳이 다른 지구촌 남녀노소의 평범한 일상이 이름 모를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우리 인생의, 아니 일상의 위대함을 느끼게 합니다. 노숙인풍의 어떤 젊은 남자가 술을 들이켜며 웃으며 말합니다. “오늘요? 내 인생 최고의 날이죠.”

사실 우리는 하루하루 기적 같은 나날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내일”이라는 랠프 에머슨의 말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면 내 인생 최고의 날이 되지 않을까요?

작가 권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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